대법 ‘뼛속까지 친미’ 비난 판사 판결에 곤혹

입력 2011-12-10 01:31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를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최은배(45·연수원 22기) 인천지법 부장판사의 전교조 징계처분 취소 판결을 두고 대법원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대법원은 공식적으로 “개별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서도 정치적 성향이 노출된 법관의 판결로 재판과 사법부의 권위가 훼손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대법원 관계자는 9일 “판결 자체는 판결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칫 SNS에 올린 의견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순수성을 의심받게 될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뼛속까지 친미’라고 비판한 최 부장판사가 전날 민주노동당에 불법 당비를 낸 전교조 교사들에게 교육청이 내린 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 보수단체가 “현행법을 위반한 행위를 인정한 꼴”이라고 공격하기 때문이다.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 외부로 드러나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는 공감대는 법원 내부에 퍼져있다. 익명을 요구한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판사가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밝히는 게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예가 됐다”면서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공적인 일에 대한 소신은 자제하는 게 슬기롭다”고 말했다.

한·미 FTA 재협상 연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하늘(43·연수원 22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판사 166명 명의로 된 건의문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제출했다. 양 대법원장은 건의문을 보고받은 뒤 법원행정처에 내용 검토를 지시했다. 인천지법원장을 통해 대리 접수된 ‘대법원장님께 올리는 건의문’은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의 사법주권 침해 소지에 주목했다. 김 부장판사는 글에서 “우리 정부는 새 경제정책을 취할 때마다 미국 기업에 소송을 당할까봐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될 것”이라며 “미국으로서는 ISD 조항이 서부시대 총잡이들이 차고 다니는 총과 같다. 굳이 뽑지 않아도 일반인이 눈치를 보며 피해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건의문에 애초 동의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한 김동진(42·연수원 25기) 춘천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려 “한·미 FTA 자체에 대해 공식적인 건의문상에 찬성과 반대의 그 어떤 입장도 표명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당초 동의했던 이유는 ISD 조항이 한국의 사법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사법부가 한·미 FTA에 대해 연구를 하고 나름의 입장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