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읽는 것은 기쁨을 얻는다… 김백겸 ‘시를 읽는 천 개의 스펙트럼’
입력 2011-12-09 17:39
“시란 시인이 마음의 환상을 글자(기호)로 표현한 메시지이기에 본질상 두 남녀 사이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다만 시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 ‘사랑’을 표현한 연애편지이다. 연애편지라는 표현을 쓴 것은 나를 보아달라는 외침과 발화가 시 안에 타오르기 때문이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전충남지회장으로 활동 중인 김백겸(58) 시인의 ‘시를 읽는 천 개의 스펙트럼’(북인)에 수록된 ‘다중문화와 멀티라이프 시대의 시들’의 한 대목이다. 지난 5년 동안 시 전문 잡지와 웹진에 기고한 글을 묶었다. 저자는 멀티라이프 시대인 현대에서 시인으로 살아가며 사유한 시의 가치와 효용성, 시가 인간의 심혼에 왜 중요한지를 시 창작 체험에 비춰 풀어낸다.
우선, 돈도 되지 않고 밥도 되지 않는 시의 효용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본다. “시를 쓰고 읽는 일은 생존에 필요한 현실적 가치와 목표와는 별 상관없이 인간에게 기쁨을 일으킨다. 시와 동일한 포에지에서 출발한 음악이 24시간 방송을 타고 일상인들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노래방에서 해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슬픈 마약’에서)
또한 ‘시의 맥락과 관점’이란 글에서 저자는 보르헤스의 ‘삶은 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인용해 이렇게 설파한다. “싫으나 좋으나 우리들은 삶의 여정에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년부터 노년까지 사물의 풍경을 인식하고 가슴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산다. 시는 이 과정의 표현이며 결국은 삶의 드러냄이라 할 수 있다.”
시론집이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고 에세이처럼 읽히는 것은 시인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이야기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 있어서다. 충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원자력연구소에 입사해 회계과에 배치되면서 지불전표와 증빙서류에 파묻혀 살다가 막연하게 동경했던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습작을 거듭한 끝에 83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일이며 84년 시인 고형렬 고운기 안도현 오태환 등과 함께 동인 ‘시힘’을 결성한 후일담은 충남문단사의 한 페이지를 관통하고도 남는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