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지도 않는 미래예측은 왜 할까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

입력 2011-12-09 18:42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댄 가드너/생각연구소

전직 재무장관, 대기업 회장, 경제학 전공 대학생, 환경미화원. 이들 중 10년 후 경제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건 누구였을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84년 실시한 ‘10년 후 미래 맞추기 게임’ 성적표를 94년 공개했다. 꼴등은 전직 재무장관들. 그나마 선방한 건 환경미화원과 대기업 회장 집단이었다. 미국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이 전문가 284명의 예측 2만7450개를 평가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전문가 예측은 무작위 선택과 적중률이 엇비슷했다. 수학 천재와 죄다 찍은 꼴찌의 수학시험 점수가 똑같이 낙제점이었다는 얘기.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부는 뭐 하러 해?

캐나라 저널리스트 댄 가드너가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원제 Future Babble)에서 묻는 게 바로 그 질문이다. 연말 연초 쏟아지는 미래 예측이 엉터리라면, 동전 던지기에 불과하다면, 예측은 왜 하느냐 말이다. 대체 우리는 엉터리 예언에 왜 귀를 기울이느냐 말이다.

도대체 맞지 않는 예측들

1968년 미국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는 ‘70년대 수억 명이 굶어죽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폭발 때문이라고 했다. 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치솟는 유가가 미국 경제를 초토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고, 90년 프랑스 금융 전문가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세계 최강대국은 일본과 유럽이라고 장담했다. 2000년에는 화성을 여행하고, 하늘에는 인공달이 떠있을 거라는 예측도 있었다.

이 모든 게 얼마나 틀렸는지, 지금 우리는 안다. 많은 나라가 인구폭발 대신 저출산으로 고민한다. 80년대 미국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고, 90년대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시대로 진입했다. 화성은 여전히 먼 우주이고, 두 개의 달은 판타지 소설에나 등장할 상상이다. 내놓을 때마다 틀리면서, 그래도 꾸준히 계속하는 것. 유가 예측이다. 70년대 석유 파동이 낳은 석유 종말론은 80년대 저유가 시대로 이어졌다. 2008년 상반기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를 넘었을 때 전문가들은 ‘200달러 돌파’를 떠들었지만, 그해 말 유가는 배럴당 33달러까지 떨어졌다. 석유 가격은 오를까, 내릴까. ‘모른다’가 정답이다.

이렇게 틀려도, 예언자들은 결코 뒷머리를 긁적이지 않는다. 반성하는 법도 없다. ‘그 정도면 거의 맞은 것과 같다’거나 ‘갑작스러운 돌발변수만 없었다면 예측대로 됐을 것’ 혹은 ‘내 예측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1년 뒤가 아니라 10년 뒤에 일어난다’는 식으로 말을 바꾼다.

예언자가 등장했다는 착각

예측이 틀리는 건, 예측이 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진,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예측하는 건 과학의 꿈이었다. 20세기를 지나며 과학이 내린 결론은 정반대였다. 규모 7의 지진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는 일어난 뒤에 알 수 있다. 구름이 어떤 모양으로 생길지 역시 구름이 생긴 뒤에나 알게 된다.

세상은 초기 과학자들이 짐작한 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세상에는 끝내 예측할 수 없는 게 존재했다. 세상에 확실한 건 불확실하다는 사실 하나라는 걸, 과학은 인정해야 했다.

인간이 변수로 개입하는 사회과학이라면, 예측은 더 난망한 일이다. 상대적으로 예측이 쉽다는 인구분포만 봐도 그렇다. 30년 뒤 30대 인구수는 출산율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된다. 어렵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1906년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1906년생 유럽 신생아가 그 후 30여 년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리라는 걸, 그때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물론 예측이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적중한 예측에 열광하는 현상을 ‘틀린 예언은 잊어버리고 맞는 예측만 기억하는’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100만명이 복권을 사서 그중 한 명이 당첨된 것과 마찬가지. 2008년 금융위기를 예언한 한 명의 전문가 뒤에는 ‘위기는 없다’고 말한 999명이 있었다. 81년 소련 붕괴를 예언해 유명해진 애모리 로빈스. 하지만 소련 붕괴는 그가 내놓은 수백 가지 전망 중 현실화된 거의 유일한 예측이었다.

그래도 궁금하다면

2012년이라는 낯선 한 무더기의 시간이 다가온다. 불길한 비구름 마냥 몰려오는 미래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한 달 뒤, 1년 뒤, 10년 뒤 내 삶은 어찌될까. 미래는 궁금하고, 불확실성의 어둠 속에서 인간은 불안하다. 묻고 싶은 인간의 욕망. 그건 이해할만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물어야 하고 답해야 한다면, 의심하자.

저자가 제안하는 흥미로운 행동요령. 예측을 기반으로 정책이나 대안을 수립할 때, 예측이 틀려도 낭패 보지 않을 방향으로 가자. 이런 거다. 지구 온난화라는 예측에 대한 대응으로 ①이산화탄소 지하 저장 ②대체 에너지 개발 ③탄소세가 있다고 해보자. 답을 찾을 때는 ‘만약 온난화라는 예측이 틀렸을 때 무용지물이 될 해법이 뭔지’를 골라내야 한다. ①은 돈 낭비, ②와 ③은 대기오염을 줄이고 석유고갈에 대비하는 효과가 있다. 틀렸다고 손해날 게 없다는 것. 그래서 효과적 대안은 ②, ③이다. 이경식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