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靑 행정관 ‘디도스 술자리’ 직전 회식 참석 은폐

입력 2011-12-08 23:55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 공모(27)씨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결심할 때 같이 있었던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 김모(30)씨가 공씨를 만나기 직전에 청와대 국내의전팀 박모 행정관을 만났던 것으로 8일 뒤늦게 확인됐다.

당초 경찰은 공씨가 합류하기 전인 1차 술자리(지난 10월 25일 저녁)에는 김씨와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비서 김모(34)씨, 공성진 전 의원 비서 출신 박모(35)씨 등 3명만 있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행정관의 존재를 일부러 숨긴 것이다. 이번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꺼린 청와대 측이 박 행정관의 술자리 참석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말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박 행정관의 존재를 숨긴 것에 대해 “필요 이상의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 공개를 안 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1차 식사자리(서울 종로 음식점)에 함께 있다가 박 행정관과 마찬가지로 2차 술자리(서울 역삼동 룸살롱)엔 가지 않은 정 의원 비서 김씨는 공개하면서 박 행정관만 인권침해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궁색한 해명이다.

박 행정관은 지난 7일 경찰 소환에 응했으나 조사를 거부했다. 경찰은 8일 박 행정관을 다시 불러 조사했다. 박 행정관은 공씨가 합류한 2차 술자리에는 없었지만 공씨의 디도스 공격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 행정관이 국회의장 비서 김씨와 디도스 관련 논의를 한 뒤 김씨가 공씨를 만나 범행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경찰이 박 행정관의 존재를 은폐하려고 애쓴 것이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한편 경찰청 관계자는 “범행을 부인하던 공씨가 8일 새벽 심경 변화를 일으켜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고 자백했다”고 전했다. 공씨는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돕는 게 최구식 의원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젊은층이 투표소를 못 찾게 하면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9일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하는 경찰은 공씨와 공씨 사주를 받아 공격을 실행한 도박 사이트 업자 강모(25)씨 일당이 한나라당 고위층 등 윗선 개입 없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결론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공씨 진술에 따르면 범행 전날 국회의장 비서 김씨가 불러 룸살롱에 온 공씨는 술자리에서 선관위 홈피 공격을 운운하는 농담이 나왔을 때 퍼뜩 강씨에게 시켜볼 생각이 들어 강씨에게 전화했다. 이어 공씨는 김씨에게 “선관위 홈피를 때리삐까예(때릴까요)?”라고 물었고 김씨는 “큰일 난다”며 만류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공씨의 진술 내용이 경찰의 최종 판단은 아니며 신빙성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40여명 규모의 특별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물증 없는 자백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9일부터 재수사에 가깝게 수사할 방침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