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전문가 진단] 평생근로 통한 소득확보 관건 정부정책, 복지로 전환해야

입력 2011-12-08 17:54


100세 장수 시대가 장밋빛만은 아닐 것이라는 두려움이 우리사회에 팽배하다. 노인들에게 사회 안전망은 아직 촘촘하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기대기에는 중·장년층의 삶이 너무 팍팍해 미안하기만 하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당장 전세난과 결혼준비에 시달리는 20∼30대 젊은이들에게 은퇴 이후 삶은 먼 훗날 시작해도 좋을 고민처럼 아득하다. 100세 시대가 두려운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준비한 만큼만 행복할 수 있는 게 100세 시대의 단면이라고 입을 모은다. 행복에 대한 삶의 기준을 바꾸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미리 노후를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기업, 사회 각계가 함께 나서서고령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연사회(無緣社會·퇴직 후 학연, 지연, 혈연은 물론 직장인연까지 끊긴 노년층의 현실)’ 문제는 이미 한국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지난여름 저서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를 통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충격적인 현실을 짚어 낸 한양대 전영수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한국의 더딘 대응을 경고했다. 평생근로를 통해 개개인이 노년을 즐길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무연사회 일본=무연사회의 냉엄함은 고독사(孤獨死)로 증명된다. 일본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숨지고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사람이 연간 3만2000여명에 달한다. 무연고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벌이는 일도 많다. 정서적 불안에 빠진 노인들이 스스로 범죄자가 되는 일도 종종 목격된다.

전 교수는 이 같은 관계 단절이나 그로 인해 파생된 일련의 문제들이 모두 돈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이 무너지면서 가난이 시작됐고, 그 비극이 노인에게 집중됐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기업 중심으로 이뤄졌다. 과거 일본 기업들은 종신고용을 통해 직원들의 결혼, 육아, 퇴직 후 안정적인 생활 등을 보장했다. 기업이 제공하는 안전망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정부가 공공투자나 연금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지고 신자유주의가 유입되면서 안전망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 칼날을 휘둘렀고 중·장년층이 흔들렸다. 노인의 숫자는 급격히 불어났다.

◇빠른 속도로 일본 닮아가는 한국=전 교수는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가 최근 한국에서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령연금을 타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정부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사망 사례를 집계할 정도로 고령사회 문제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준비는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은퇴 이후 삶에 대한 고민이 퇴직을 앞둔 50∼60대들에게만 시급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기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는 만큼 은퇴 이후 생활자금 중 40∼50%를 개인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에 못 미치고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비율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100세 시대가 비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전 교수는 “일본은 40년 전부터 노인 문제를 준비해 왔고 연금체계가 우리보다 훨씬 공고한데도 문제가 발생했다”며 “‘슬픈 100세 시대’를 막으려면 정부가 국민에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식의 전환이 노인문제 해결의 시작점=전 교수는 고령사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평생근로를 통한 소득 확보에서 찾았다. 근로를 통해 관계가 지속되고 가난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고령인력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 교수는 “30년 이상 교단에서 경험을 쌓은 교사를 정년이 끝났다고 팽개치는 건 낭비”라며 “이를 저소득층 과외 교사 등 다른 복지 문제와 결합해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 고용을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고 ‘숙련인’으로 인식하면 활용할 공간들이 넘친다는 뜻이다.

특히 정년연장의 카드를 쥐고 있는 기업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정년연장을 비용으로만 인식하지 않도록 임금 피크제를 활성화하고 노인 고용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정부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 정책시각도 복지중심으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일례로 일본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노인들의 구매대란을 언급했다. 일본에서는 가난한 동네에 소매점이 사라져 두부 한 모 사려고 1㎞를 걷거나 버스를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다. 대형마트가 작은 동네까지 입점해 소매점을 없앴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해 철수한 탓이다. 전 교수는 “정부가 더불어 살기를 강조해 대형마트의 진입을 막았다면 애초에 방지할 수 있는 문제”라며 “100세 시대 대책은 복지에 대한 시각 변화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