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통과 화합의 정직한 언론을 다짐하며
입력 2011-12-08 17:47
국민일보 창간 23주년을 맞는 아침이다. 청년 23세는 한 사람의 일생을 85년으로 계산하고 이를 하루 24시간에 맞춰 볼 때 아침 6시30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세상 모든 일에 감각이 깨어 있고 누구와도 함께 갈 수 있는 친구처럼 열려 있는 청춘의 신문. 23년을 성원하고 애독해온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희망의 아침에 먼저 우리 사회의 당면한 문제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인 복음의 가치에 대해 말하려 한다. 현재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표상으로는 좋아지고 있음에도 체감지수로는 더 악화되고 있는 경제와 첨예화하고 있는 사회갈등이라 할 수 있다. 현 정부는 두 번의 경제위기를 가장 단시간 내에 극복할 정도로 남다른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국민들 반응은 아주 딴판이다.
국민일보 창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살림살이가 전보다 나빠졌다는 응답이 40%에 이르고 살림살이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5.5%에 불과하다. 더욱이 걱정되는 것은 내년의 경제가 나빠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37.2%)이 나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10.8%)보다 3.4배가량 많다는 점이다.
23년간 불편부당… 청량한 신문
독자들이 이런 어두운 비전을 갖는 데에는 국제 경제 환경을 포함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정치 불안정과 사회갈등 증폭현상이 주요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집권 세력은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불통이고,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과거에 얽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월등히 많은 표 차이로 당선됐고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도 컸던 이명박 정권이 추락하고, 한나라당이 해체 직전의 단계로 몰리는 것은 집권 세력이 게으르거나 할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국가운용의 우선적인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한 방향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층에게는 일 열심히 하는 능력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듣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외곬으로 가기 십상이다. 지난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드러났지만 20∼40대의 젊은 세대가 거의 송두리째 집권 여당을 등진다는 것은 그 사회가 폭발 직전의 불만족 상황에 놓여 있다는 뜻임을 인식했어야만 했다. 그것을 외면하거나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려 하니까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파고가 몰려오는 것이다.
발전의 동력이 약해지면 사회를 분열시키는 세력이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전통적인 보도의 기준으로 볼 때 신뢰성이 극히 의심스러운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가 편당 600만 이상의 청취 횟수를 기록하는 이 비정상적인 환경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사실과 루머, 공정비판과 명예훼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을 사로잡는 방식의 미디어 행위는 사회분열을 가속화시키게 될 것이다.
한·미 FTA와 같이 고도로 전문적이고 중요한 국가의 정책에 대해 은어·비속어를 사용해 국가권력을 비아냥거리는 판사들은 사법부의 공정성을 훼손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사법체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내년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제 남북통일을 논하는 것은 남의 경우처럼 먼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을 사회의 균형적인 힘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들은 심한 파당성에 가담한 지 오래고, 새로 등장한 편법적 종합편성채널들이 야기하는 언론계의 사활을 건 전쟁은 언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문제의 답은 생명의 빛을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복음은 가난한 자를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고, 청결한 마음으로 화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정신이라야 사회의 어둠을 밝히고 각자 맡은 일에 깨끗한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23년간 ‘사랑’ ‘진실’ ‘인간’을 사시(社是)로 기독교 정신이 스며든 대안적 언론의 사명을 성심껏 수행해 왔다고 자부한다. 독자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하여 보수적 전통 위에서 시시비비를 분명해 해 왔고 섣부르게 정파적 이해관계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근자의 내부 불협화로 한국교회에 심려를 끼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독자들에게 솔직히 사죄드린다. 우리는 복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는다. 23년간을 지켜온 불편부당의 전통과 복음의 고귀한 능력에 의해 우리 스스로 깨어나고, 사회에 밝음과 청량감을 주는 신문으로 거듭 나아갈 것을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