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현주소] 땜질식 뒷북 처방 급급… 성폭력·비리 근절 못해

입력 2011-12-08 17:38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장애인복지시설 인권침해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사회복지시설 운영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시설 종사자와 장애인 간에 인권침해 등 불법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미신고시설 10곳과 개인이 운영하는 조건부 장애인시설 109곳, 특수학교와 병립된 생활시설 45곳이 대상이었다.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는 3년마다 전국 장애인시설의 서비스 환경 등을 점검·평가한다. 하지만 폭행, 성폭행, 강제노역, 금품착취 등 각종 인권침해에 대한 대단위 실태조사는 처음이다.

◇땜질식 뒷북 처방, 수박 겉핥기 점검이 문제=복지부는 올해 초 실태조사 착수를 계획했지만 위탁 조사기관의 사정으로 미적거리다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이 다시 조명받자 부랴부랴 조사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복지부는 그동안에도 내부고발자나 언론 등에 의해 특정 장애인시설의 비리와 범죄가 폭로되면 사안별로 조사, 확인될 경우에만 조치를 취했다. 정기적인 인권침해 실태 파악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보다 그때그때 땜질식 뒷북 처방에 그쳤다는 얘기다. 1996년 경기도 평택 에바다복지회 비리 사건, 2005년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2006년 성람재단 성추행 사건, 2009년 목포농아원 성폭력사건 등 장애인복지시설의 비리와 인권 침해가 반복된 이유다.

수박 겉핥기식 점검·평가도 문제다. 2001년 복지부는 조사 대상이었던 시설 410곳 중 우수시설 29곳을 선정했다. 광주 인화학교는 우수시설 중 하나였다. 졸업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은 2000년대 이전부터 자행됐지만 복지부 조사로는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시설 조사와 평가를 통해 문제점이 드러나도 심층 조사나 개선방안 제시가 미흡하다는 것도 문제다. 목포농아원은 2007년 복지부 평가에서 시설 환경 및 설비에서만 B(양호) 등급을 받고 C(보통) 등급 4개, D(미흡)등급 1개를 받았다. 여러 항목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만큼 사후 조치가 필요했지만 복지부는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2년 뒤인 2009년 목포농아원은 내부고발자에 의해 생활교사의 장애인 성폭행, 개인후원금 횡령 등이 폭로됐다.

복지부는 3년에 한번씩 하는 장애인 시설 점검은 총체적이고 종합적 평가로, 인권침해 같은 심층적 내용까지 조사하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국 인가시설 452곳을 전수조사하기엔 비용 등 효율성을 고려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앞으론 매년 표본 시설을 정해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정책으로 가야=복지부가 파악하는 장애인복지시설은 지난해 말 현재 452곳(입소자 2만4395명)이다. 2008년 347곳, 2009년 397곳 등 매년 급증 추세다. 452곳에는 개인운영 조건부 인가시설이 109곳(2144명), 미인가 시설 10곳(223명)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장애인 시설의 비리와 인권침해가 지역사회와 단절된 폐쇄된 공간에서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운영 조건부 인가시설이나 미신고시설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 손길이 잘 미치지 않아 이 같은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이 지난해 4월 전국 미인가 장애인시설 22곳을 조사한 결과 54%인 12곳에서 성폭행, 수급비 횡령, 폭행, 부당노동행위 등 인권침해가 적발됐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서인환 사무총장은 “현재 복지부가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는 미신고시설 10곳 중 4곳에서도 심각한 인권침해가 포착돼 재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사무총장은 하지만 “대형 비리나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난 곳은 대부분 큰 법인 형태의 복지시설”이라면서 “족벌경영으로 인한 폐쇄적 운영은 물론 관리 감독기관과 유착 등이 조직적으로 일어날 소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복지시설을 지역사회와 연관시키고 개방화해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국회와 정부는 장애인시설의 이사회 정수를 일정비율 이상 공익이사로 선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해 시설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서 사무총장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그래도 시설이기 때문에 감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은 탈시설화, 시설 줄이기가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시설 격리수용보다는 그룹홈, 공동 연립가정 등 개방형 주거형태로 단계적으로 전환해 장애인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시설 입·퇴소 자유, 탈시설 지원을 위한 지자체의 전담인력 배치, 자립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임시 주거공간 확보(체험홈 등)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는데 주거, 활동보조, 직업, 교육, 의료, 문화 등 전반에 걸친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