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세대’ 꿈과 도전] 극한 경쟁에 숨막혔다… 서울대·연세대 자퇴한 유윤종·장혜영씨

입력 2011-12-08 17:09


‘상위 1%, 그들만의 리그’를 박차고 나온 젊은이들이 서로 만났다. 지난 10월과 11월 ‘명문대생’이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집어 던진 유윤종(23)씨와 장혜영(24·여)씨는 8일 “대학 교육이 본인에게 의미가 없다면 버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전했다.

◇다닐 이유가 없다면 떠나라=서울대 사회학과 06학번이었던 유씨는 입학 때부터 서울대생이라는 사실이 굴레였다고 했다. 유씨는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는 자리에서는 ‘서울대생’이었고, 친척이 모이면 ‘서울대 다니는 조카’였다. 서울대에 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목 받고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부담이었다. 유씨는 “우리나라의 대학이 과연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다닐만한 곳인지 모르겠다”며 “학교를 다닐 이유를 찾지 못했고, 무엇보다 서울대 졸업생이 되고 싶지 않아 학교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지난달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자퇴한 장씨의 사유는 더 개인적이다. 경기도 하남 한국애니메이션고교를 졸업한 장씨는 ‘명문대에 다니는 딸’이 돼 이혼 후 홀로 뒷바라지해 준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어 연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벌어지는 극한 경쟁에 장씨는 숨을 쉬기 힘들었다. 장씨는 “듣고 싶은 수업은 수강신청과 동시에 마감되고, 인기 없는 수업은 금방 사라지고, 결국 경쟁에서 지면 가혹한 시간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순응과 순종을 강요받는 곳이 대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이 시스템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놀랍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배움, 그 자체는 즐거웠다=두 사람에게 대학이 나쁜 기억으로 가득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배움 그 자체는 매우 즐거웠다고 유씨와 장씨는 입을 모았다. 특성화고교에서 영상실무를 중심으로 공부했던 장씨에게 대학은 학문을 처음 선물해준 공간이었다. 장씨는 “팍팍한 학사 일정은 힘들었지만 배우는 것 자체는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각종 조모임과 대형 강의에서 자행되는 지식의 하향평준화에 대학이 껍질만 있고 학문은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장씨는 학문에 깊이 빠질 수 없었다고 한다.

유씨 역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학생활이 싫지만은 않았다. 고교 시절 돈을 내고 봐야 했던 각종 논문을 무료로 무제한 접할 수 있는 도서관도 행복한 선물이었다. 유씨는 “고교 시절에는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는 전단지를 배포할 때도 지문검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렸다”며 “대학에서는 아무도 나를 제지하지 않아 좋았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그런 지식에 접근하도록 도와 준 선생님들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밥값이 싼 점이 좋았다”며 해맑게 웃었다.

◇‘경쟁 속 고독’이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아픔=시험 보고 학교 가고, 시험 보고 취직하고, 경쟁으로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우리사회가 젊은이의 고독과 아픔이라고 두 청년은 지적했다. 유씨는 “초·중·고교에서 배운 것은 시험을 보고 그 성적으로 보상을 받는다는 논리가 전부”라며 “결국 진짜 삶에 대해서는 20대 중후반이 돼서야 고민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답답해했다. 유씨는 “세상이 학교가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고 힘들다”고 했다.

장씨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장씨는 “자신의 잘못은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외롭고 고독하게 만든다”며 “가족이나 사회 그 누구도 나의 문제에 대해 책임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우리시대 젊은이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도 시험을 보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험에 붙어도, 성적을 잘 받아도 잠시 안도할 뿐, 결국 그 자리에서 다시 경쟁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장씨는 “외롭고 고독한 경쟁의 속성을 잘 알지만 멈춰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결국 멈출 수가 없게 된다”며 “우리나라에서는 ‘하다’의 반대어는 ‘안 하다’가 아니라 ‘딴 걸 하다’이다”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장씨는 책을 쓰겠다고 했다. 장씨는 지난달 연세대 중앙도서관에 ‘편지’(대자보)를 붙인 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언론에서는 나를 ‘명문대 자퇴생’으로만 보도해 진짜 나의 내면에 있는 이야기는 전달되지 않았다”며 “한국 사회의 어떤 부분이 지금의 나를 낳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씨는 현재 한 출판사와 논의 중이다.

유씨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준비 중이다. 지난달 29일이 입영일이었다는 유씨는 12월 말부터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은 뒤, 법원에서 판결을 받고 나면 18개월의 교도소 생활을 할 예정이다. 유씨는 “어머니가 ‘군대 간다 생각하라’고 했다”며 “감옥에 가기 전에 신변을 정리하고, 작업 중인 청소년 인권운동 역사를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복역 후에는 출판 관련 업무를 배울 계획이다.

◇하고 싶은 말=인터뷰를 마치며 장씨는 수험생과 대학생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냥 아니면 된다. 거창한 각오 따윈 필요 없다”고 했다. 유씨 역시 “불합리한 대학교육에 대한 거부선언과 각종 청소년 인권운동이 여러분에게 한번쯤 다른 길을 생각해 보라는 ‘마음의 노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