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세대’ 기성세대의 위로와 제언] 기성세대가 물려준 포기·안주 과감히 거부하라
입력 2011-12-08 21:16
기성세대와 ‘파란(FARAN) 세대’의 구분은 뚜렷했다. 기성세대들은 20대 초반 이하 연령대가 주축인 파란 세대와의 차이를 인정했다.
파란 세대는 사회화 과정이 디지털 경험과 일치된, 기존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대라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시선 역시 일부 우려 섞인 눈빛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긍정적이었다. 그들이 주역이 되는 사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파란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될 때를 위해 기성세대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 감성적·창조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각계에서 멘토 역할을 자임하는 이들은 따뜻한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사교육과 입시지옥, 치솟는 등록금과 청년실업률에 허덕이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멘토들은 “좌절하기는 이르다”며 격려했다.
◇기성세대의 눈에 비친 ‘파란 세대’=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파란 세대의 가장 큰 특징에 대해 개인주의적 성향을 꼽았다. 기성세대에 비해 공적 영역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는 것이다.
언론을 접할 때도 편집된 신문보다는 인터넷 기사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의 이슈가 되는 어젠다보다는 검색 순위 1위의 연예 기사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이전 세대와는 크게 달라졌다는 얘기다. 김 원장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마찬가지”라며 “젊은 세대의 투표 성향이 마치 진보 성향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실은 인기 있는 연예인을 고르듯 정치인을 선택한 측면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김홍신 건국대 석좌교수는 “보고 듣는 정보가 과거에 비해 많고 다양해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며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현실 혐오를 느끼는 젊은이가 많다”고 진단했다. 열등감을 느끼고 주눅이 든 듯한 모습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아지는 이유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는 ‘파란 세대’에 대해 “기다리거나 참기 보다는 급하면 모든 것을 검색하여 지식을 얻는, 개인주의화 되어 있고 사람을 믿는 것보다 기계나 컴퓨터를 더 믿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조국을 사랑하기보다 지구인·세계인으로 자부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파란 세대에 대해 “사회나 국가, 인류 전체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고 당장의 쾌락에 더 관심을 쏟는다”며 “객관적으로 사실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넷·SNS 등을 통해 공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다. 손 석좌교수는 “젊은 세대 중에서 향후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게 큰 과제”라고 말했다.
◇‘파란 세대’를 위해 할 일은=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은 “향후 디지털 문명은 일상의 감각이 활용되어 발전할 것”이라며 “10∼20대의 디지털 경험이 사회적 자산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느냐가 그 사회의 성장 잠재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기성세대의 적극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기성세대가 권위적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장 잠재력도 갉아먹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 소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며 “협력적 관계를 통한 문제 해결방식을 장려하고, 수평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기업·조직 문화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는 “기성세대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고,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도 “기성 세대는 겉으로 드러나는 ‘다름’을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대 간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태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기성세대는 모순적인 사회구조와 시스템을 개혁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며 “일회성 대안 찾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그들의 도전정신을 고취시키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젊은 세대도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바꿔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노디자인 대표인 김영세 상명대 석좌교수는 “한국의 경쟁력은 인재, 특히 앞으로 젊은 세대에게서 경쟁력이 나올 것”이라며 “기성세대와 사회 리더들이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모두 양측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나 교수도 “기성세대는 현재 사회의 운영 원칙에 대해 되돌아 볼 책임의식이 있어야 하고 젊은 세대는 배우고 적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파란 세대’에 보내는 위로=우리나라 첫 여성대법관이자 소수자 권리보호를 위해 노력해 온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무작정 ‘꿈을 크게 가지세요’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남들은 이만큼 했는데 나는 왜 못 했나’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며 “사회가 인정해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1981년 처음 판사복을 입은 김 위원장은 48세에 대법관이 됐다. 여성대법관은 처음이었다. 서울대 법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서강대 석좌교수가 됐다. 청춘들의 눈에는 부러운 ‘스펙’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 때는 모두가 힘든 시절이라 누구와 비교하며 힘들어 할 틈이 없었다”면서도 “상대적으로 더 힘든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찾으면 보다 기쁜 삶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도 “기성세대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2006년 7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됐지만 사고 6개월 만에 강단에 복귀했고 전과 다름없이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사고가 났을 때도, 병상에 누워있을 때도 한 번도 좌절한 적 없다”며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돌이켜보면 어떤 일이든 아버지의 뜻과 반대로 살아왔다.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 교수의 아버지는 이 교수가 과학자가 아니라 한의사로 살기를 원했다고 한다.
‘광고천재’로 불리는 이제석씨는 “기성사회의 틀을 부수라”고 했다. 이씨는 “경쟁을 위한 경쟁,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왜 공부하는지, 왜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하는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30세가 되기 전 세계 3대 광고제인 미국 뉴욕 원쇼 페스티벌 최우수상, 광고계의 오스카상인 클리오어워드 동상 등 국제 광고제에서 40여개의 상을 휩쓴 ‘광고천재’지만, 그도 지방대 출신으로 국내 광고사 입사에서는 번번이 문전박대 당하는 아픔을 겪었던 ‘루저’였다.
이씨는 “어렸을 때 꿈꿨던 것을 리스트로 만든 후 하나씩 해보며 심장에서 요동치는 무언가를 찾으라. 그리고 상황을 따지지 말고 도전하라”고 했다. 그는 “미래가 없다, 장래가 없다,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 모두가 기성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며 “청년들 모두가 기성의 가치관에 과감히 물음표와 도전장을 던지라”고 강조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만인의 멘토가 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부 교수 역시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책에서 ‘청춘은 20년, 30년 후 같이 먼 곳은 잘 보지 못하는 근시이고, 서둘러 꽃 피워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가 되려 한다’고 썼다.
김 교수는 “길고 멀리 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생은 절대 짧은 것이 아니다”며 “가장 실패했다는 그 순간부터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자신 만의 꿈을 찾고 그 속에서 열정적으로 도전하라, 절대로 좌절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멘토’로 활약한 가수 김태원씨는 “현재를 완전히 사랑하라”고 조언했다. 음악과 인생의 끝자락에서 기적처럼 부활한 그는 “가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나는 늘 사건을 맞이하며 살았다”며 “사건을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치라”고 강조했다.
그가 청춘들에게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그대의 고독이 그대의 자산 중 가장 위대했음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진실입니다.”
탐사기획팀, 진삼열 기자 indep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