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학교 활로를 찾는다] 시골 마을 시온고에 가보니… 한국 동요가 울려퍼졌다
입력 2011-12-08 15:20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우즈베키스탄의 한적한 시골인 시온고 마을에 지난 7일 한국 동요가 울려 퍼졌다. 5∼6세 유치원생 9명은 고사리 같은 손과 발로 율동을 따라하며 목청껏 동요 ‘곰 세 마리’를 불렀다.
이 마을에 우리말이 다시 사용된 것은 지난 5월.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 돕기운동을 펼치고 있는 민간단체 ‘프렌드아시아’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한글을 가르치는 자원봉사자 2명을 파견하면서부터다.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백현주(23·여)씨와 상명대 러시아어문학과에 재학 중인 국은지(23·여)씨는 유치원과 초등부 한글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하루 1시간씩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글 자모와 동요를, 오후에는 초등학생 20여명을 대상으로 기초 회화를 가르친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진 이 마을은 한 때 고려인 집단주거지였다. 전체 주민 4000여명이 사할린에서 집단 이주했으니 한 핏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동안 이 마을에서도 한국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옛 소련의 토착화 정책에 따라 러시아어로만 말하고 쓰도록 교육받았다. 강제이주 초기 고려인 정착촌에 개설된 고려인 학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시온고 마을에서도 한국어 교육이 사라졌다.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인종 융합정책으로 고려인 집단주거지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정원이 15명인 유치원에 고려인 자녀는 10명뿐 나머지는 카자흐인 4명과 우즈베크인 1명이다.
나이 70대 안팎의 이주 2세대들도 인사말을 포함해 간단한 일상대화를 제외하면 통역 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마을 노인들이 주사위 2개를 굴려 말을 움직이는 우즈베키스탄식 장기를 두면서 나눈 대화에서도 대부분의 어휘는 러시아어였다. 노인들은 자신들이 쓰는 말이 현재의 한국어와는 틀려 한국 사람들이 있을 때는 가급적 말을 아낀다고 했다. 이민 3세대와 4세대는 아예 한국어로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국씨는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진 먼 마을에서도 한글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고려인 학생들이 있다”며 “한글과 한국문화를 다시 보급하기 위한 노력들이 하나둘 보태지면서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온고(우즈베키스탄)= 글·사진 황일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