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다시 보다] ‘유럽의 겨울’… 통합커녕 해체 갈림길

입력 2011-12-08 15:06


2004년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유럽은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했을 때 이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독일과 프랑스 청년들은 자국의 이름 대신 유럽의 청년으로 불리고 싶어 했다. 2011년, 유럽연합(EU)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으로 정치·경제적으로 하나가 된 유럽이 통합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정치에 관심 없던 젊은이들은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경제는 그리스를 시작으로 뿌리째 뒤흔들리고 있다. 지난여름,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극우주의자는 무고한 청소년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다방면으로 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을 둘러보았다.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 앞에는 텐트 220여개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런던증권가를 점령하라(Occupy London Stock Exchange·LSX)’ 시위대다. 런던 북서부의 핀스버리 광장에도 이같은 텐트촌이 있다. 초반에는 2000명 정도가 모였지만,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상주하는 인원이 줄었다.

지난달 15일 성당 앞, 말콤 블랙맨스(30)는 “최근 경찰의 경계가 삼엄해져 시위대가 조를 짜 보초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가 시작된 지난 10월 16일부터 이 곳을 지켜온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이들은 원래 증권거래소 등 금융가가 밀집해 있는 패터노스터 광장을 점령하려고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막강한 재력과 힘을 가진 은행가들은 이곳을 정부의 규제로부터 지켜내 자치권을 유지해왔다. 광장은 이들이 선출한 대표가 있는 자치구 ‘시티오브런던’에 속해있다. 자치구 경찰들이 광장 진입로를 막고 있었다.

시위대는 금융가와 성당 사이에 텐트를 쳤다. 성당과 광장 진입로는 약 20m에 불과하다.

자원봉사자들이 빵을 굽고 간단한 음식을 해서 시위대에 나눠줬다. 한 편에서는 세미나가 열리고, 한 편에서는 기타와 함께 흥겨운 춤도 이어졌다. 시위를 축제로 만들자는 분위기다. 텐트에 쓰인 ‘우리는 99%다’ 등의 문구가 이들의 주장을 대변할 뿐 과격한 움직임은 없었다. 관광객들은 세인트폴성당이 아닌 텐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트위터를 통해 이 시위를 처음 제안한 카이 와갈라는 “여기서 일하는 것은 그동안 해왔던 일 중 가장 신나고 매력적인 일이다. 우리는 매일 오후 1시와 7시에 모임을 갖고 토론을 한다. 누구든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는 사람은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텐트촌은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누는 마당이 됐다. 사회 운동가, 학생, 성직자, 지나가던 관광객까지 세미나나 토론에 참여한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시위에 나왔다고 했다.

세인트 마틴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로스 에이트켄는 “등록금이 올들어 세 배나 오르면서 다들 정치가 내 삶과 관련이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됐다. 이 운동은 반자본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급진적이진 않다”며 “나는 이미 저렴한 학비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이번에 대학에 들어가는 동생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토로했다.

영국의 의료비가 무료라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일례로 암검사를 해서 결과를 알려면 1년 정도 걸린다. 그러니 돈 있는 사람들은 고가의 의료비를 주고 진단을 받는 형편이다.

며칠 후 찾은 프랑스 파리의 젊은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파리의 중심에서 8㎞정도 떨어진 신도시 라데팡스 광장에서는 ‘라데팡스를 점령하라(Occupy La Defense)’ 시위가 한창이었다. 시위는 지난달 4일 시작됐다.

이들은 광장에 진을 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등 자신의 주장이 담긴 표어와 조형물을 펼쳐놓았다. 하루 평균 보통 100명에서 많으면 250명까지 모인다. 시위가 시작된 후 3주 동안 6차례 경찰이 진압해 이들의 기지를 공격했고 11명을 체포했다.

이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줄리는 “여기 모인 사람들은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라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라. 세계 자본주의가 실패했다는 이들의 주장에 공감해 매일 여기 와서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라데팡스 시위대 바로 앞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알록달록한 부스가 마련됐다. 그 사이로 쇼핑 나온 시민들이 지나가고, 그 바로 옆에는 시위대를 감시하는 경찰들이 서 있었다.

런던·파리=글·사진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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