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인터뷰] 옌쉐퉁 “중국, 한반도 통일 막는 정책 갖고있지 않다”
입력 2011-12-08 14:24
옌쉐퉁 칭화대학 당대국제관계연구원 원장
옌쉐퉁(閻學通) 중국 칭화대학 당대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은 중국이 한반도에서 통일도 전쟁도 바라지 않는 소위 ‘불통불란(不統不亂)’ 정책을 선호한다는 시각에 대해 “중국은 모든 나라의 통일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옌 교수는 미래의 중·미 관계에 대해서는 경쟁을 위주로 하지만 보조적으로 협력하는 틀 속에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일보는 지난 1일 칭화대 내 교수 연구실에서 한·중 관계, 한반도 문제, 중·미 관계 등을 주제로 옌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얼굴을 붉히거나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의 견해는 가감없이 밝혔다.
-중국 지식인 중에는 “한국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한국 뒤에 보이는 미국의 그림자 때문에 한계를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이 편중되게 북한 편을 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나라가 북한과 친하게 지내면 한국 국민과 정부가 불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자기의 적과 왕래하거나 우호관계를 맺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적과 친구를 구분한다면 그 외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중·한 관계가 나쁘면 한국에게 이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한 관계가 아무리 좋더라도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노력하면 중국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을 더 배려할 수 있다. 한국이 중국에 불만을 표현함으로써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불통불란’을 바란다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국은 대북한 정책에서 전쟁 방지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중국의 외교에서 한반도 통일을 저지하는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들겠다. 첫째, 한반도 통일은 한국과 북한에 달려있는 것이지 중국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한반도를 통일되게 하거나 통일되지 않게 할 능력이 없다. 한반도의 통일은 누구도 저지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통일된 한반도와 통일되지 않은 한반도 중 어느 것이 중국에 더 좋은지 누구도 논증할 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불통불란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본다. 셋째, 중국 스스로도 지금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국은 어느 나라의 통일도 반대할 수 없다.”
-중국과 인접한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긴가.
“중국의 변경은 수천㎞나 되고 주변 국가도 많다. 북한과의 국경은 중국의 변경 중 10분의 1도 안된다. 더욱이 한반도 문제는 한국 외교의 거의 90%를 차지한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이 중국에 생사가 달려있는 것처럼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주변에는 22개 국가가 있다. 한국인들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느끼는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옌 교수는 평소 국족(國族·중국 내 56개 민족을 아우르는 전체 국민이라는 개념으로 옌 교수가 쓰는 용어) 부흥을 주장한다. 또 중국의 군사력은 경제력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선 주변국들 사이에서 중국위협론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굴기하되 주변국들이 안심하도록 하는 방안은 없는지.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중국은 국방건설에서 속도를 더 내야 한다. 나는 중·미 간 군사력 차이가 커질수록 주변국들이 더 걱정한다고 본다. 즉 주변국들은 미국에 의지해서 중국과 힘의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데 중국과 미국의 군사력이 같아지면 이 국가들은 더 이상 미국에 기댈 수 없게 된다. 이럴때 주변국들은 중국을 더 이상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둘째, 중국은 주변국들에 안전보장을 제공해야 한다. 중국은 항상 비동맹 원칙에 따라 외교를 하면서 주변국들에 안전보장을 제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동맹정책을 펴는 미국에 의지한 것이다.”
-최근 중국과 미국간 경쟁이 첨예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양국은 군사적 충돌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옌 교수는 보고 있고, 양국이 핵 억지력을 갖고 있는 것을 그 주된 요인이라고 했는데.
“그렇다. 양국이 모두 핵을 가졌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전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전략이 아직도 전 세계 평화를 지키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토마스 셀링 교수는 이런 전략이 평화를 지킬 수 있음을 논증해 노벨상(경제학)을 타지 않았는가.”
-바람직한 중·미 관계는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나.
“중·미 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두 가지다. 객관적인 원인은 중·미 간 격차가 줄어들면서 갈등이나 충돌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불가피하다. 또 하나는 주관적인 원인이다. 즉 미국이 발전 속도가 높은 중국의 군사력을 의도적으로 억눌러온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무기수출금지라는 정책을 펴면서 동맹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왔다.”
-미국은 ‘아태지역 귀환’을 선언하면서 미얀마까지 품안에 넣으려 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그동안 미얀마 독재정권을 지지해왔다는 지적이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자국 이익을 위해 외교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미국의 아태지역 귀환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이는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채택한 중국 특색의 고립정책)와 비동맹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중국은 이제 유소작위(有所作爲)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더 큰 책임을 지고 주변국들에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질 높은 동맹국을 키워야 한다.”
-내년에는 한국에 대선이 있는데 한·중 관계의 미래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북한의 정권 승계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한국 차기 정부는 누가 집권하든 중·한 관계를 개선할 것으로 중국 정부는 보고 있다. 남북 관계도 개선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남북간 모순이 완화되면 중한 관계도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다. 북한 정권 승계는 가족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확률은 사실 낮다. 성공 여부는 김정일의 건강에 달려 있다.”
옌 교수는
옌쉐퉁(閻學通·59)교수는 ‘중국 국가이익 분석’(1996)이라는 저서에서 처음으로 중국의 국가이익을 체계적으로 개념화했다. 그는 국방력과 경제력을 동시에 증강시켜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특히 중국이 강해질 때 중국위협론도 사라진다는 논리를 편다.
그는 군사력 강화 없이는 화평굴기(和平?起)는 불가능하고 미국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중국의 대표적 학자다. 일부에서는 그를 가리켜 중국판 네오콘인 ‘네오콤(neo-com)’이라고 부른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현대 국제관계이론의 맥락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주목받고 있다.
1982년 헤이룽장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1986년 국제관계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2년 미국 UC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칭화대학 당대국제관계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며 국방대학 겸임교수, 국가안보위원회 고급연구원도 겸하고 있다. ‘중국굴기와 그 전략’(2005) ‘국제관계연구의 실용적 방법’(2007) ‘왕패(王覇)천하사상으로의 안내’(2009·공편) 등 수많은 저서와 논문이 있다.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국제정치중국저널)’ 편집 책임을 맡고 있다.
베이징=글·사진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