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다시 보다] 유럽 금융위기의 진원지 그리스… ‘복지천국’의 새드엔딩… “커피 한잔도 사치”

입력 2011-12-08 14:01


지난달 21일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아테네 관광의 출발점인 광장 한쪽의 빨간색 꼬마기차 옆으로 경찰과 오토바이·경찰차가 보였다. 이날 아테네 대중교통 파업이 예정됐기 때문이다. 노조는 결국 파업을 취소했지만 경찰은 광장 주변 곳곳에 배치됐다.

시위는 이제 그리스에서 일상이 됐다. 같은 날 아테네와 피레아스의 약국들은 파업에 들어갔다. 그리스 정부가 재정 문제로 의료비를 많이 삭감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정부의 긴축재정안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다. 이에 대해 그리스인이 최근 30년간 누려온 복지 혜택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다른 나라의 비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왜 몇 달째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고치파키스 테미스(53) 교원노조 사무국장을 먼저 만났다. 그는 “1000유로(약 150만원)이던 교사 초봉이 내년 1월부터 650유로로 깎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9월 15일부터 학기가 시작됐지만 학생들은 지금까지 교과서를 받지 못했다. 교과서를 발행하던 공기업이 사기업으로 전환됐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교과서 1권에 80센트인데 복사를 해서 쓰다보니 한 권에 16유로나 든다”고 정부를 성토했다.

우리의 명동인 에무르 광장에서 만난 대학생 요르고스 데오토글루(22·아테네대 건축학과)는 “취직이 안돼 외국으로 가려고 한다. 긴축정책 때문에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재건축 수요가 없다. 내 미래는 유럽의 다른 나라에 있는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전직 택시 운전사인 소티리스 요르가코플러스(68)는 “세금이 너무 많아져 예전보다 살기가 힘들다”며 “가능한 한 모든 생필품을 절약하고, 여행은 상상도 못한다. 밖에 나가 커피 한 잔 마시기도 어렵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매일 안에만 있으려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고소득층은 좀 나을까. 전직 은행간부 야니스(67)에게 가장 큰 타격은 부동산특별세다. 그는 “연금이 크게 줄어들기도 했지만 ‘하라치’라는 부동산특별세금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금을 확실히 걷기 위해 전기세와 하라치를 연동시켜, 하라치를 못내면 전기도 끊기는 상황이 됐다.

가장 긴축안을 실감하는 부류는 고연금 수령자들이다. 이들은 매달 2000유로씩 받다가 1000유로나 깎였다. 타격이 크다. 야니스는 “그동안 연금을 받기 위해 월급에서 엄청 뗐지만 65세가 되면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무너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스는 노동인구 4명 중 1명이 공무원이다. 1980년대 초까지 경기가 좋던 그리스가 30년 만에 망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치인은 무작정 공무원을 늘려 돈으로 표를 사고, 유권자는 그런 정치인을 계속 뽑아줬다. 기성세대가 정치인의 선동에 넘어가 표를 몰아준 탓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리스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그리스 국민도 공무원의 수가 너무 많고 통제 불능의 이익 집단이 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식구가 공무원이니 말 못하는 구조다.

요즘 그리스의 불안이 최고조에 달해있다. 구제금융을 못 받으면 당장 연금이 확 줄어든다. 외국 이민에 대한 적대감도 늘어나고,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깊어졌다. 공무원 노조에 대한 신뢰도 떨어진다. 거리 곳곳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었다.

아테네=글·사진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