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공단 ‘산새로CEO중창단’ 지휘하는 김문수 교수 “40·50대 사장님들 합창에 푹 빠졌어요”
입력 2011-12-08 13:53
40대 후반의 메조소프라노가 복음(福音)의 쟁기로 국내 최대 산업단지인 경기도 시화·안산공단 경영자(CEO)들의 가슴을 휘젓고 있다. 바위처럼 단단하던 CEO들의 마음이 고운 모래가 돼 그녀가 그리는 십자가와 하트 속으로 빨려든다. 주인공은 ‘김칼린’으로 불리는 한국산업기술대(산기대·총장 최준영) 코러스합창단 상임지휘자 김문수(경기도 분당 가나안교회 집사·아래 사진) 교수다.
그녀에겐 이렇다 할 지휘봉이 따로 없다. 열 손가락으로 ‘소리 나는 꽃’을 피워낸다. 그녀는 아름다운 선율로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은 공대생들의 마음 밭을 곱게 갈아엎는다. 통나무 같던 남학생도, 찬바람 쌩쌩 나는 여학생도 김 교수의 눈빛과 마주치면 모두 미소남녀가 된다.
40대 후반의 진보 성향 회사 대표와 50대 보수적인 성격의 사장님도 그녀 앞에선 맥을 못 춘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24시간 사업에 올인 해도 먹고살기 힘든 판에 한가하게 합창 타령을 할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반 가요나 ‘뽕짝’이면 모를까. 이래봬도 직원 수백명이나 되는 회사 대표인데 난 못∼해.” 이랬던 이부락씨도 최근 스티브 잡스 사망으로 180도로 달라졌다. 적자생존의 현실에서 회의를 해오다 마침내 음악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고자 김 교수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남상경씨도 동행했다. 김윤희씨는 성악가의 꿈을 접고 의사의 길을 택해 아쉬워하다 마침내 용단을 내렸다. 이영숙 백인기 이성현 전영화 허우석 정경숙 김재환 강충주 원경순 이순천씨 등도 이 교수의 열정에 반했다.
‘산새로CEO중창단’은 이렇게 탄생했다. 8개월 만에 기적의 무대가 섰다. 지난 5일 늦은 오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산기대 아트센터에서 자식뻘 되는 코러스 합창단의 창단 10주년 기념식에서다. 영화 ‘시스터액트’ 삽입곡인 ‘I will follow him’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메들리’, 대금산조, 플라밍고 초청공연 등이 이어졌다. 재기발랄하던 무대에 반전이 생겼다. 턱시도를 차려 입은 남성과 울긋불긋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성 대표들이 무대에 올랐다. 다소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짓자 객석에선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김 교수의 열 손가락이 허공에서 파르르 떨리자 서울 송파 구립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세기 동안 침묵을 지키던 가슴과 입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나 이제 가련다/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련다” ‘오 솔레미오’와 ‘산타루치아’에 이어 ‘아침이슬’이 무대와 객석에 흩뿌려졌다. 이슬은 이내 눈물방울로 흘렀다. 아직 신앙의 문턱도 넘지 못한 단원도 많지만 이들은 코러스 합창단과 함께 캐럴 메들리를 신나게 부르며 춤을 췄다.
중창단은 이날 데뷔를 계기로 김 교수와 함께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과 사랑운동에 동참한다. 김 교수의 음악이야기 ‘희로애락’은 이제부터다. 그녀의 세 번째 미션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는 국회중창단을 만들고 있다.
시흥=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