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러시아당, 총선 전에 득표율 미리 협의했다”… 모스크바 선관위 관계자 부정선거 실태 폭로

입력 2011-12-07 10:47

선거는 처음부터 조작된 것이었다. 대규모 시위대가 러시아 모스크바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모스크바 한 투표소의 선거관리위원장은 “부정선거는 총선 전부터 시작됐다”고 폭로했다고 AP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부정선거 이렇게 저질렀다=선거 며칠 전,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을 비롯해 4개 주요 정당은 각 당이 얼마만큼의 득표율을 가져갈 것인지 미리 협의했다. 블리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은 득표율 68~70%를 요구했지만 야당들이 너무 과도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집권당은 65%로 양보했고, 공산당의 득표율도 챙겨주는 것으로 절충했다. 공산당은 이번 선거에서 제1야당이 됐다. 여야가 모두 득표율 조작에 동참한 것이다.

투표소 직원들은 선거 당일인 지난 4일, 통합러시아당을 찍은 투표용지를 한 번에 50장씩 투표함에 몰래 쑤셔 넣었다. 이들은 감독관의 눈을 피해 몰래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연습까지 했다.

그러나 조작된 용지를 넣는 것만으로 65%의 득표율은 불안했다. 선관위는 투표권이 없는 이주민을 유권자로 둔갑시키기 위해 가짜 유권자 명단을 작성했다. 이들에게 집권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기표된 투표용지 수백장을 나눠주며 투표를 강요했다. 그래도 집권당 표가 별로 안 나오자 작은 정당이 받은 수십표를 뺏어왔다.

◇푸틴당의 실제 득표율은 25%=통합러시아당은 이번 선거에서 공식적으로 49.5%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는 4년 전 64.3%에서 현저히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조작된 상황으로 볼 때 실제 지지율은 훨씬 낮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선거를 고백한 선관위원장은 “조작된 투표용지를 제외한다면 실제 특표율은 2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부에 집권당의 실제 득표율을 보고했으나 득표율을 더 높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유일한 독립 선거감시기구인 ‘골로스’ 측은 “대부분의 선거법 위반 사례가 이렇게 지역 차원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선관위원장은 해고될 것을 각오하고 AP의 인터뷰에 응하는 용기를 발휘했다.

◇시위 확산, 진압에 군·장갑차 동원=시위는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다른 도시로도 확산되고 있다. 시위 사흘째인 7일(현지시간) 수백명의 시위대가 모스크바 트리움팔라야 광장 인근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푸틴은 사기꾼이고 도둑놈이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이날 광장을 봉쇄하고 시위대 10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진압에 군 2000여명, 경찰 5만여명이 동원됐고 도심에 장갑차도 등장했다.

전날 경찰에 구금된 시위대 가운데는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인사인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도 포함됐다. 모스크바 법원은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러시아의 유명한 인터넷 논객 알렉세이 나발니와 일리야 야신에게 15일 구류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경찰 명령 불복종 혐의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전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선거를 다시 할 것을 촉구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선거는 인민들의 뜻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현 러시아 지도부는 선거 결과를 백지화하고 새로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총리는 6일 “내년 대선 이후 개각을 단행하겠다”고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미국에 이어 영국 도 러시아 선거부정에 우려를 표명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