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도루묵

입력 2011-12-07 18:14

수년 전 가족과 함께 강원도 홍천의 오지에 있는 살둔 산장에 간 적이 있다. 요행히 방을 잡아 하루를 묵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등산객들과 함께 구워먹은 도루묵의 맛이 꽤 괜찮았다. 마침 함박눈이 내려 도루묵은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런 좋은 추억 속에 일전에 재래시장에 들렀다가 도루묵을 샀다. 도루묵은 죽었어도 눈이 크고 투명해 얼핏 보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한다. 그런데 웬걸 집에 돌아와 소금간을 한 뒤 구워먹어 보니 정말 맛이 없었다. 같은 생선이라도 시기와 장소에 따라 맛 차이가 컸다.

등이 황갈색인 도루묵은 일정한 모양이 없는 흑갈색 모양의 물결무늬가 있으며 옆구리와 배는 은빛이다. 덩치에 비해 입이 큰 편이며 위로 치켜올라가 있다. 차가운 물에 사는 어류로 동해와 사할린, 알래스카 등의 북태평양 해역에 분포돼 있다. 수심 200∼400m의 모래가 섞인 뻘 바닥에서 살며 11월 초순에 살이 오르고 기름져 이때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사실 도루묵은 피난 갔던 선조 임금이 한양으로 돌아와 전에 먹어본 ‘묵’이란 생선이 맛이 없어 ‘말짱 도루묵’이라고 했다는 고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배고팠던 시절 묵이란 생선이 너무 맛이 있어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가 이를 철회한 것이다. 이 때문에 도루묵은 긍정적인 의미로는 잘 안 쓰인다.

주초에 민주노동당, 참여당, 통합연대가 합해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출발했다. 통합연대는 원래 민노당 소속 인사들이 종북 노선에 반대해 진보신당으로 분리돼 나갔다가 통합 의견 차이로 다시 진보신당을 탈당해 꾸린 단체다. 따라서 참여당만 없다면 ‘도로 민노당’에 가깝다. 보수 세력이 이번 통합을 ‘도루묵 정당’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한창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과 ‘혁신과통합’이 합쳐질 경우에도 주요 인사들은 옛 열린우리당 멤버다. 사소한 문제로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이유가 숨어 있다. 그래봤자 도로 열린당 아니냐는 것이다.

흔히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합친 결과의 겉모습이 예전과 같더라도 내용이 달라지면 그런대로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분열보다는 통합이 수권에 유리한 것은 불문가지 아닌가. 모처럼의 통합이 질적 변화로 이어져 도루묵이 되지 않길 바란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