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불법 기승] 무자격자도 서류 조작해 OK… ‘묻지마 대출’ 횡행

입력 2011-12-07 21:38


대부업체에 취직해 대출심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최수환(가명·30)씨는 7일 출근하자마자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대출신청 서류 8건을 접했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 5∼10건의 서류를 심사한다.

대출중개업체 소개로 들어온 서류들을 들여다보자 곳곳에서 수상한 흔적이 드러났다. 집 주소가 울산광역시로 표기된 20대 남자는 직업을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적었다. 직장은 서울 삼성동에 있는 주유소였다. 300만원을 빌려 달라는 이 신청자의 대출사유는 ‘생활비’였다. 직업과 사유를 대충 꾸며낸 ‘작업대출’ 서류의 냄새가 났다.

주유소로 전화를 걸어 신청자가 실제로 일을 하는지 물었다. 제3자가 대출 여부를 알지 못해야 한다는 영업수칙 때문에 대부업체 직원임을 밝히지 않았다. “거기 김○○씨 계십니까?”라고 묻자 “나오긴 하는데, 영업직이라 외근 중인데요…”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몇 번이나 들어본 뻔한 대답이다. 주유소에 영업직이 있는지 묻고 싶지만 그만뒀다. 옆자리에 앉은 직장 동료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사지도 서비스를 이용해 직장 주소와 전화번호를 찾아보는 것으로 심사를 대신하고 있다.

7일 대부업계에 따르면 대부중개업체가 대출자 직업 등을 허위 기재해 대부업체로부터 대출금을 받아내는 ‘작업대출’ 관행이 만연해 있다.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대출자는 대부중개업체를 통해 직업과 신용을 ‘세탁’하고, 대부업체는 실적을 위해 대출심사를 건성으로 한 채 돈을 빌려주고 있다. 그야말로 ‘묻지마 대출’이 횡행하는 것이다.

서류를 허위 기재한 작업대출 사례가 드러나더라도 대부업체는 대부중개업체를 형사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적당한 보상금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매듭짓는다.

대부업체와 대부중개업체가 ‘검은 공생’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고객을 중개업체가 알선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저신용자는 양산되고 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부업체와 대부중개업체의 공생 관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계속 멍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법정이자율을 위반한 대형 대부업체 4곳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와 산와대부(산와머니) 등 4개 대부업체에 대한 검사결과를 내일 서울시청에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대부업체에 대한 제재권은 서울 강남구가 가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대부업법상 지난 6월 27일 최고이자율이 연 44%에서 연 39%로 인하됐지만, 만기가 도래한 1436억원 규모의 대출 6만1827건의 계약을 갱신하면서 종전 최고이자율을 그대로 적용했다. 부당하게 거둬들인 이자는 30억6000만원으로 집계된다.

대부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이들 대부업체는 적발 횟수에 따라 1∼6개월의 영업정지 처분, 등록취소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업계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