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만 신설하자는 것은 땜질식 개편”
입력 2011-12-07 20:22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부자증세와 주식 양도차익 과세에 대해 “예산 심의 법정기한이 다 지났는데 갑자기 얘기할 사안은 아니다”면서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박 장관은 “땜질식으로 할 수는 없다”면서 “소득세제 개편은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 검토해 전면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으니 후보자들이 연구해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심판을 받는 방법도 있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6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만난 박 장관은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특히 예산과 세제 등에 대해서 만큼은 재정 곳간 지킴이로서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만난 사람=오종석 경제부장
-정치권에서 무상보육 등 복지 요구가 높다.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은 가능한가.
“당초 방침대로 확고하게 지킨다. 내년도 예산안도 당초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규모가 늘지 않도록 해서 재정건전성에 영향 안 미치도록 할 것이다.”
-각 당이 주장하는 증액 규모가 3조∼11조원에 이를 정도인데 어떻게 맞춘다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일하는 복지, 맞춤형 복지, 지속 가능한 복지 등 세 가지 원칙에 따라 합리적인 것은 수용하겠지만 맞지 않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 늘어나는 부분은 (예산안에서) 감액하는 범위 내에서 증액하는 방향으로 협의할 계획이다.”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주식 양도차익 과세 방안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주식 양도차익 과세는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가늠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클 것으로 보인다. 또 하필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쳐 시기도 좋지 않다.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자는 것은 잘 보면 법인사업자와 개인사업자 간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그 구간에 계시는 분 대다수가 30∼40명 종업원을 두고 있는 개인사업자들이다. 법인세를 내는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보다 자영업자에 대한 세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제안하는 등 요구가 높아질 것 같은데.
“우리나라 소득세제 문제점은 여기 저기 있다. 종합적으로 검토해 전면 개편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지 덜렁 과세구간 하나 신설하자는 것은 땜질식 개편이다. 현실 반영을 못하는 과세구간을 올릴 것인지, 카드 소득공제 등을 줄일 것인지 등까지 종합적으로 차분하게 연구해 논의해야 한다. 예산 심의 법정기한 다 지났는데 갑자기 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다음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으니 후보자들이 연구해서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심판을 받는 방법도 있겠다.”
-내년 경제 전망은 어떻게 보나.
“내년 상반기에 유로존 국가들의 채무 상환이 몰려 있기 때문에 위기가 상당히 증폭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가 증폭되면 해법도 찾아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하반기는 좀더 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고 우리도 그 전망을 존중하고 있다.”
-고용은 올해 지표상 좋아졌다고 평가했는데, 내년에는 어떨 것으로 예상하나.
“올해 일자리는 숫자상으로는 많이 만들어졌다. 이에 따른 기저효과에다 내년 세계경기도 안 좋아질 것이어서 일자리가 올해보다는 많이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다. 직장에서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청년층 등의 수요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답을 고민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데 어떤 대책을 갖고 있나.
“2014년까지는 청년 구직자 수가 정년 퇴직자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인구 구조상 실업 문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대신 2014년 이후에는 퇴직자가 더 많아진다. 그래서 공공기관이 그때까지는 (신규 채용을) 더 많이 하고, 2014년 이후에는 퇴직하는 분들을 조금 늦게 퇴직하도록 붙잡아두는 정책을 쓰려고 한다. 해외 진출 등 신규 부가가치 창출 분야를 위한 인력수요 등을 중심으로 공공기관이 더 적극적으로 인력을 뽑도록 내년 신규채용 규모를 늘릴 생각이다.”
-월세 세입자가 늘고 있는데 월세 대책은 어떤 것이 있나.
“월세를 전세 정도로 계약기간을 늘린다든지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보겠다. 대학생을 위한 별도의 보장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있더라.”
-신물가지수 개편이 꼼수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데.
“여러 지적이 있다. 개편지수 적용 시점이 앞당겨진 것을 지적하는데 시기는 계속 당겨왔고, 또 그렇게 해서 괴리를 줄이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금반지도 2009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2008년 한국은행의 신국민계정 등에서 빠진 것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빼고 효과가 미미했으면 (비판이) 덜 했을 텐데,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힘겹게 처리했다. 한·중 FTA 추진은.
“추진 시기 등이 문제지 한·중 FTA는 반드시 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본다. 다만 우리와 산업구조가 경합하는 쪽이 있고 식생활, 소비 구조도 아주 비슷해 영향이 아주 클 것이다. 농업 부문 같은 경우 타격이 의외로 클 수 있다. 서로 민감 분야를 어떻게 정리하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다. 협의를 열심히 해서 진도가 나가도록 하겠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정책 방향은 어떤 것이 있나.
“가계부채는 손에 달걀을 쥐고 있는 것과 같아서 너무 힘을 주면 바로 깨져 버리고 느슨하게 하면 손바닥에서 흘러 떨어져 깨진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닌 만큼 하루아침에 줄이기는 쉽지 않다. 일단 주택 거래만 활성화돼도 주택담보대출 등은 상당 부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집을 못 팔아 불가피하게 대출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나.”
-취임 6개월이 돼 간다. 소회가 있다면.
“늘 잠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자고나면 나라 하나가 신용등급이 하락됐다는 등의 소식이 이어졌다. 처음 취임했을 때는 그렇게 비가 많이 와서 (물가 때문에) 자고나면 하늘만 쳐다봤다. 그러다 보니 물가 등으로 국민들께 죄송스러웠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나마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예산안을 빡빡하게 낸 점 등은 외신이나 신용평가사 등 국제사회에서 인정해줬다.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도 전망이 상향된 점 등이 그래도 뿌듯한 것 같다.”
-10일 국민일보 창간 23주년을 맞아 한마디 해 달라.
“국민일보와 독자들이 지역 이념 세대 소득 등으로 찢긴 우리나라를 통합하고 갈등을 치유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정리=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박 장관은… 서민들과 소통 주력 야구 마니아
박재완(56)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대학교수 같은 느낌을 준다. 말도 차분하고 분위기 자체가 온화하다. 대외발언 때도 학술적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학자형 장관이란 말이 빈말이 아니다. 하지만 겉보기의 유약한 이미지와 달리 그가 쌓은 이력은 화려해 만만찮은 내공을 자랑한다.
경남 마산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 장관은 행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 감사원, 대통령비서실을 거친 뒤 성균관대 교수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의장, 17대 국회의원 등 다양한 길을 걸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과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어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다. 그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측근이다.
이로 인해 그가 지난 6월 인사청문회에 섰을 때 야당은 그에게 “실패한 MB노믹스(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아바타”라고 비판했다. 박 장관은 이를 의식하듯 취임 이후 친서민 정책과 일자리 창출에 보다 역점을 두고 서민과의 소통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장보기가 겁난다는 주부들의 말씀이 가장 뼈아픈 지적”이라고 할 정도로 물가 안정에 적극적이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서민경제 어려움은 본인이 몸소 경험하기도 했다. 박 장관은 최근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자신의 집이 팔리지 않아 못 들어가는 바람에 이를 포기했다. 주택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 완화, 실수요자 주거부담 경감에 관심이 많은 것은 그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가 서민의 눈높이와 맞는 분야는 또 있다. 바로 야구다. 박 장관은 관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야구 마니아다. 야구 명문 부산고 출신인 그는 ‘롯빠’(롯데자이언츠의 광적인 팬)로 불린다. 고교 재학시절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를 보기 위해 틈만 나면 서울로 올라와 응원한 것은 당연지사. 요즘도 프로야구 시즌만 되면 밤에 TV에서 하는 야구 하이라이트를 꼭 챙겨본다고 한다.
박 장관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고 팀워크와 통계를 매우 중시한다는 점에서 야구와 경제는 일맥상통한다”며 “우리 경제팀 포수로서의 조정 역할을 잘해 경제 난관을 극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고세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