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삶의 풍경] 잃어버린 우산
입력 2011-12-07 18:07
역 앞 학림 다방에서 LP 판이 지글지글 도는 가운데 화들짝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8시간을 기다려본 적이 있나요? 사랑이라던 당신들의 배우자는 지금 파릇한 청춘 대신 부석한 얼굴에 검은 주근깨가 덕지덕지 내려앉고 있습니다. 그 초라한 얼굴색이 어여쁜 홍조로 다시 올 리 없습니다만 그래도 사랑의 희미한 기억을 붙들고 간신히 추억으로 이 질곡의 삶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몇 시에 와 있을까요? 삶의 시계추는 역시 다부지고 잔인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버릴 수 없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다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으세요? 진정, 사랑한다고 가슴에서 뜨거운 피울음 섞인 말을 해본 적이 있는지요? 잃어버린 그 우산을 받쳐줄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생각할 즈음 그 사랑은 이미 거기 없습니다. 우산은 우리에게 가장 큰 인정이고 따뜻한 체온입니다. 사랑이란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는 길은 우산을 받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눈깨비 흩날리는 엄동설한이 정말 무서운 까닭입니다.
그림·글=김영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