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아의 행복스케치]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
입력 2011-12-07 17:56
나는 살아가면서 늘 두 가지 부담감을 안고 있다. 바람직한 신앙인으로서의 경건한 이미지와 이미지 컨설턴트로서 완벽한 이미지를 항상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선한 크리스천이 돼야 한다는 것과 한 전문인으로서 언제나 좋은 이미지만을 연출하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나를 누를 때가 많다.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삶은 분명 믿지 않는 사람들의 그것과 구별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때로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때도 있다. 주님의 자녀로서 생각과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크리스천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을 때 죄책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의 이미지 두 가지
하나님께서는 가끔 내 딸을 통해 나의 부끄러운 생각과 말과 행동을 각인시켜 주신다. 나는 딸과 대화하는 중에 무심결에 내면의 쓴뿌리를 드러내거나, 분노를 터뜨리거나, 운전을 하면서 신호 위반을 한다. 그때마다 딸은 영락없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엄마, 바깥에서 크리스천이라고 절대 말하지 마!”
나는 속으로 뜨끔해하며 딸에게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대개는 ‘인정!’이라고 말하고 꼬리를 내린다. 어쨌든 내가 딸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은 한 순간 주님을 의식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는 크리스천의 신분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말, 그리고 모든 행동에서 신앙인으로서 의식했을 때와 의식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는 무척 달랐다. 주님을 향한 의식 여부에 따라 크리스천으로서 긍지를 느끼기도 하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주님은 ‘늘 깨어 있어라’고 말씀하셨으리라.
이미지 컨설턴트로서 갖는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언제 어디서나 멋지고 세련된 좋은 이미지의 소유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은 내가 이미지 컨설턴트이기 때문에 늘 완벽한 이미지를 연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데 때로는 내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고, 상대에게 어떻게 비칠지 의식하지 않았을 때나 내 본연의 약점을 드러낼 때도 있다. 이미지 컨설턴트라는 여자가 자기 표정이 왜 저래? 매너를 가르치면서 자기가 매너 없잖아! 스피치를 가르치면서 내 발음과 화법이 좋지 않다는 평을 들을 때는 정말 괴로웠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없다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보지만 우울한 기분은 떨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 크리스천으로서, 이미지 컨설턴트로서 좀더 철저하게 의식을 했어야 했다.
인간은 의식하는 존재다. ‘의식’이라는 용어는 이미지 컨설팅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다. 한 개인의 이미지는 상대를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대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의식한다. 상대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표정을 의식하여 미소를 짓고, 말을 듣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도록 간접화법을 구사하고, 좀더 남을 배려하고 품격 있는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 의식적으로 세련된 ‘매너 스킬’을 몸에 익힌다. 그리하여 그들은 점점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여 대인관계를 원만히 이끄는 리더가 된다. 따라서 아무리 인간적인 내면을 가졌더라도 상대를 의식하는 마인드와 대인관계 기술을 모르면 좋은 사람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될 수 없다.
날마다 의식하며 살자
특히 한국의 크리스천들 중에 영적으로는 성숙하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인드와 표정, 말투, 매너, 태도 등의 자기표현 부족으로 좋은 크리스천 이미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미지 시대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어필할 수 있어야 전도가 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주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늘 의식하고 거기에 걸맞은 자기표현을 하자.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비칠까를 의식하다 보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의식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점점 자연스러운 표현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상대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날마다 의식하여 존경받는 크리스천이 되자.
정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