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부정선거 후유증 심각… 시위현장 軍 급파

입력 2011-12-07 01:21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인 러시아가 선거 후유증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최대 1만여명의 시민들이 수도 모스크바 거리로 뛰쳐나와 항의시위를 벌이자, 정부는 시위현장에 군대를 급파했다. 2000년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대와 진압군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5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재집권과 부정 선거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스크바 도심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이들은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이 명백한 선거부정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시위대는 “혁명을 이루자” “푸틴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크렘린궁으로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들 중 진압 과정에서 300여명이 체포됐다.

정부는 시위현장에 군대까지 파견했다. 정부군 대변인 바실리 판첸코프 대령은 “군대는 오직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파견된 것”이라고 인테르팍스통신에 말했다. AFP통신은 군인을 가득 태운 트럭 몇 대가 주요 간선도로를 타고 모스크바 중심으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경찰은 불법시위에 가담할 경우 즉시 체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현지 라디오방송 ‘에코 모스코바’ 인터뷰에서 “정직한 선거가 아니었다. 대통령직에 복귀하지 말라”고 푸틴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고르바초프는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다. 정부가 진실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끝내 얻지 못할 것”이라고 개탄했다.

러시아의 유명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비는 “통합러시아당은 사기꾼이고 도둑”이라며 트위터에 자신이 체포돼 경찰버스에 앉아 있는 사진을 올렸다. 시위 주동자 일리야 야신도 15일간 수감됐다.

러시아 야권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제1야당인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는 이번 총선이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가장 더러운 선거였다”고 규탄했다.

이번 총선에서 약 20% 득표한 것으로 집계된 공산당 측은 자신들이 공식 발표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공산당은 집권당에 대해 법적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지난 4일 총선에서 115개의 투표소에 감시단을 파견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도 “34곳의 투표소에서 기표용지 불법투입, 유권자 명단 조작 등 명백한 선거부정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미국도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 총선 과정에서의 선거부정이 “매우 염려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러시아 유권자는 이번 선거부정 논란에 대해 충분히 조사된 결과를 보고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러시아 측은 클린턴의 주장은 양국 간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러시아 정치문제는 서방국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