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핵심변수는 지역·나이 한국에선 계급이론 안통해”

입력 2011-12-06 22:44


이갑윤 교수 신간 ‘한국인의 투표 행태’서 분석

‘서민층=야당 지지, 고소득층=여당 지지.’ 이런 구분은 정당할까. 유권자가 사회적으로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에 따라 투표 성향이 나뉜다는 계급 투표 이론은 한국에서는 사실이 아닌 걸로 확인됐다. 지난 8차례의 대선 및 총선을 분석한 결과 유권자의 소득과 학력, 직업 같은 계층적인 요소는 여당과 야당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에 별달리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신 한국 선거판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는 지역과 연령이었다. 결국 유권자의 고향과 나이가 지지후보를 결정했다는 뜻이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이갑윤(60) 교수는 신간 ‘한국인의 투표 행태’(후마니타스)에서 1992∼2008년 각각 네 차례 치러진 대선과 총선에서 드러난 한국인의 투표 행태를 분석해 “한국 선거에서는 계급투표의 경험적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분석 데이터를 보면, 유권자의 소득이 상·중·하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 투표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 학력이 고졸인지 대졸인지,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지, 도시와 농촌 중 어디에 거주하는지 등 서구 국가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학력, 종교, 거주지(도농)별 차이도 거의 없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한 유권자를 분석한 결과 역시 비슷했다. 소득 수준이나 직업, 심지어 노조 가입 여부조차도 민노당 지지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국 선거판을 통찰하는 가장 유용한 렌즈는 지역이었다. 유권자가 어느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 영남인은 한나라당을, 호남인은 민주당을 찍는 집단별 투표 패턴이 반복돼 왔다. 상대적으로 호남 사람의 민주당 지지도는 견고한 반면 영남의 젊은층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띄었다. 주목할 대목은 이런 지역 투표가 1987년 민주화 이후 강화됐다는 사실이다.

이 교수는 “권위주의 시대 지역 투표는 대선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었고 응집도 역시 (현재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동향 출신에 대한 호감 수준을 넘지 않았다”며 “반면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민이 특정 정당과 선거연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속적 연대를 형성하면서 지역 투표 현상이 심화됐다”고 주장했다. 연령의 의미도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 교수는 “연령 효과의 크기는 지역 변수의 약 3분의 1 정도”라며 “2000년대 들어와 그 영향력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대선과 총선의 차이도 확인됐다. 대통령을 고를 때는 후보자의 신뢰도와 행정능력 등이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 반면, 대북정책 같은 정책적 이슈는 별다른 파급력을 갖지 못했다. 반면 총선에서 중요한 건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였다. 대통령이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 현재 경제사정이 좋은지 나쁜지 등이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