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기름재앙 4년] 겉으론 말끔한 백사장… 주민들 가슴엔 아직도 ‘기름띠’

입력 2011-12-06 22:14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르포

6일 낮 12시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겨울 문턱의 만리포 해변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모래사장은 4년 전 ‘검은 재앙’ 기름유출 사고로 시커멓게 뒤덮여 있던 해변을 연상키 어려울 정도로 백색으로 눈부셨다.

대형 참사는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6분쯤 만리포 앞바다에서 하역을 기다리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를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이 들이받아 원유 1만900t이 바다로 쏟아지면서 비롯됐다. 순식간에 청정했던 태안 해안은 바닷물 대신 시커먼 원유로 가득 덮여 끔찍한 상황이 연출됐다. 해안 70.1㎞와 해수욕장 15곳, 섬 지역 23곳이 검게 물들었다.

1995년 여수 씨프린스호의 기름 유출보다 2.5배, 97년 경남 통영시 제3오성호 오염사고와 맞먹는 수준. 사고 발생 14시간이 지나 구름포와 만리포 해수욕장까지 기름이 유입됐고, 사고 3일 만에 서해안 일대로 오염이 확산됐다.

이 사고로 양식장 820곳 1만5039㏊와 육상 종묘시설 81곳 248㏊가 오염됐고 피해신고만 5만5000건에 이르렀다. 또 관광객들의 발길마저 끊어지며 일반음식점 4067곳과 콘도 및 숙박업소 1092곳이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지금 만리포해수욕장은 원유가 뒤덮어 검은 눈물을 쏟아냈던 4년 전 사고 현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겉으론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태안군에 있는 국제환경운동연합 조홍재(46) 사무국장은 “겉으로 보기엔 태안 바다가 원상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바위틈이나 절벽 등에는 아직도 기름띠가 그대로 남아 있어 완벽한 원상회복은 요원한 상태”라고 말했다.

전국 최고 양식 굴로 일본에 수출도 많이 했던 태안 굴 주산지 의항면을 찾았다. 의항항 소근리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텅 빈 마을 같았다. 유류사고 발생 전 의항항 일대 바다를 빼곡히 메웠던 굴 양식장은 모두 자취를 감춰버렸다.

사고 발생 전 굴 양식장이 호황을 누리던 때는 바다에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굴 따는 작업을 하느라 의항항 일대는 활력이 넘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썰렁한 바다로 변했다.

주민 임모(48)씨는 “사고 전엔 농한기 없는 마을로 양식장에선 월평균 1000만원의 소득을 올렸지만 지금은 생계가 막막하다”며 “지금도 바닷속 1m만 파 내려가면 기름찌꺼기가 나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다. J횟집 주인 최모(54)씨는 “해변가 횟집들이 예년 같으면 점심시간에 북적북적했으나 기름유출 사고 이후 한산하기만 하다”며 “기름유출 사고 이미지 때문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모양”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해수욕장에서 50년째 슈퍼를 운영하는 이모(78·여)씨는 “원유사고 전엔 겨울에도 하루 10만원 매상은 거뜬했는데 지금은 아예 장사가 안 돼 먹고 살기 힘들다”고 넋두리를 했다.

학암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최모(45)씨는 “나이 지긋하신 손님들이나 사고 후 보상 여부를 물을 뿐 젊은이들은 관심 밖이다”며 “정부까지 이렇게 무관심할 줄 몰랐다”고 성토했다.

문승일 서해안유류피해총연합회 사무국장은 “유류사고 4년이 돼도 제대로 해결된 사안이 없다”며 “조기 피해복구를 위해 국무총리가 나서던지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 한다. 삼성 측도 가해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는 자세로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안=글 사진 정재학 기자 jh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