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규영] 유럽 의회에서 배우자

입력 2011-12-06 17:46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최루탄이 난무하는 난장판 국회를 그저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대한민국 국회가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원만한 토론과 결정이 도출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무리일까? 폭력이 난무하는 국회가 정해진 규칙과 질서를 토대로 평화로운 의사진행과 합리적 수용을 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언제까지 대한민국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는 4류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토론은 일정한 주제에 관해 상호 의견이 다른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상대방의 의견이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견해가 다르다면 왜, 무엇 때문에 다른가를 설명하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의원들 언행 문자 기록물로

작금 국회에서 통용되는 토론행태는 한편으로 분단 이후 남북 대결과정에서 팽배한 흑백논리에 압도되고 영향을 받은 까닭이기도 하다. 동시에 합리적 토론이 어려운 것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깊이 뿌리박힌 상하, 남녀, 적과 동지의 구분 등 이분법적 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국가기관이다. 한국 국회의 토론문화와 악습은 하루바삐 개선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개선되기 어렵지만 점진적이라도 발전하기를 바라는 절박하고 안타까운 심정에서 선진 유럽 의회를 토대로 두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로 국회 속기록을 신문형태로 발행해 보자. 국회에서 논의되는 모든 발언과 토론 내용을 언론매체 형태로 공개하는 작업이다. 국회방송 등을 통해 의원의 발언이 중계되기도 하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유권자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독일 연방정치교육센터는 상하 양원의 각 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발언한 내용들을 ‘의회(Das Parlament)’라는 신문 형태로 매주 발간한다. 이 주간신문은 속기록 형태로 세세한 내용까지 문자화된 역사적 기록물로 남는다. 발언 도중 박수를 치는 경우도 신문에 표기된다.

독일 유권자들은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기 위해 이 자료를 참고한다. 따라서 의원들은 토론과정에서 품격에 맞는 언어와 행동을 해야 한다. 공중부양이나 쇠톱, 망치 등이 끼어들 틈이 없다. 또 ‘의회’는 의정활동만 보도하는 경우 독자층이 넓지 못하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주제를 택해 특집 논문이나 해설 형태의 부록을 발행함으로써 국민들의 식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원내 의석배치도 바뀌어야

둘째로 유럽을 선도하는 일부 국가의 원내 의석배치에 관심을 가져 보자. 의원들은 국민들로부터 특정 정파나 당리당략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일정 기간 위임을 받은 ‘정치 청지기’들이다. 청지기 역할은 오랜,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이들이 먼저 진정한 국리민복을 위해서 앞장서야 한다.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의원들의 모습은 원내 의석배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선진 유럽의회의 경우 특정 정당지도자, 그리고 다선일수록 의장석 가까이에 의석이 배치된다. TV에 중계되는 원내 본회의장은 뒷좌석이 비어 있고, 당대표, 원내대표, 다선 의원들이 앞좌석부터 자리하면서 정당 간 특정 주제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인다.

국리민복을 위해 애쓰고 앞장서는 리더십의 상징으로 대한민국 원내의석 배치를 앞자리부터 정당 지도자들과 다선 의원들 순으로 배정해 보자. 그리고 국민의 반응을 기대해 보자. 한국 정치의 바람직한 개혁과 발전은 작은 변화로부터 커다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규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