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좀 더 인민을 위해
입력 2011-12-06 17:46
지난 7월 중순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가장 자주 접한 단어는 ‘G2(Group of Two)’가 아닐까 싶다. 원저우 고속철 참사, 항공모함 바랴크호 시험운항,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 1호 발사 성공, 궈칭제(國慶節) 62주년, 신해혁명 100주년, 중국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7기 6중전회), 미국과의 갈등….
어느 것 하나 G2와 연결짓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원저우 참사 당시에는 G2 반열에 오르기까지 절차를 무시한 채 발전을 추진한 게 문제가 됐고, 17기 6중전회 때는 G2에 걸맞은 소프트파워 구축이 화두였다. 바랴크호가 뜨면 ‘해양패권 G2시대’, 톈궁1호가 성공하면 ‘G2시대 우주굴기’, 이런 식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높아진 위상만큼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부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굴기가 세계에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한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눈앞의 이익에 몰두한 나머지 우격다짐을 벌이는 힘센 이웃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왜 이렇게 됐을까. 중국으로선 이에 할 말이 많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치푸’(欺負·얕보거나 업신여김)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은연중 드러내는 지식인이나 언론인들이 적지 않다. 굴기 과정에서 주변국들이 견제용으로 ‘중국위협론’을 제기하지만 중국이 정말 강대국이 되면 그런 우려는 사라질 것이라는 논리를 펴는 학자도 있다. 진정한 슈퍼 파워가 될 때까지 앞만 보고 가겠다는 모습은 중국 자신을 위해서도 위험해 보인다. 이웃들이 모두 등을 돌린 뒤에 손을 내밀어서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지만 중국이 당면한 국내적인 과제들을 눈여겨 볼 필요는 있다. 새로운 강자라고는 하지만 ‘G2의 그늘’은 생각보다 훨씬 깊다.
심각한 빈부 격차는 그 첫째다. 도시 빈곤층은 언제라도 사회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는 대낮에도 큰길가에 장기판을 펴놓고 그냥 시간 보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머리는 산발인데다 입고 있는 옷에서는 땟국이 주르륵 흐른다. 고향을 떠나 아파트 지하실 등 겨우 몸만 뉠 수 있는 곳에 거처를 마련한 그들이니 어쩔 수도 없다. 여기에다 터무니없이 오른 세금 때문에 폭동을 일으킨 소상인들, 자신들 소유 땅을 개발업자에게 팔아넘긴 지방 관리를 성토하며 시위에 나선 농민들 등 부패로 인한 크고 작은 소요 사태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뿐인가. 환경오염은 거의 방치 수준이다. 보하이(渤海)만에서 몇 달 동안 원유 유출이 계속됐지만 이 바다에서 생선 등을 공급받는 수산물 시장이나 횟집이 망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어느 언론도 원유 유출에 따른 수산물 오염의 심각성을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대 혼란이 벌어지는 상황보다는 차라리 문제를 덮어둔 채 지나가는 게 낫다고 당국은 판단한 듯하다. 대기 오염도 마찬가지다. 주중 미국대사관은 자국민을 위해 베이징 대기오염 수준을 열심히 웨이보를 통해 알리고 있으나 중국 당국은 미세먼지 측정 기준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실정이다. 더욱이 치명적인 불량식품이 적발돼도 이제 더 이상 눈길조차 끌지 못한다.
중국이 G2로 올라선 첫 해였던 2011년도 저물고 있다. 공산당을 살리고 나아가 중국을 살리는 길은 바로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에 있다는 기본을 중국 지도부가 소홀히 했던 한 해는 아니었을까. 새해에는 박제된 표어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일반 백성들이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산당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