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시편] 깊은 슬픔은 환희의 전주곡
입력 2011-12-06 17:38
슬픔 가운데 깊은 슬픔이 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있다. 전 존재가 숨죽이는 슬픔, 전 존재가 흔들리는 슬픔이 깊은 슬픔이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더 이상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있다. 뉴욕에서 9·11사태가 났을 때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고백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깊은 슬픔 속에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히 여기는 것을 상실했을 때 경험하는 슬픔은, 깊은 슬픔이다.
깊은 슬픔을 경험한다는 것은 아픈 일이다. 그런데 때로 깊은 슬픔이 환희의 전주곡이 된다. 깊은 슬픔이 가져오는 깊은 환희는 신비에 속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역설이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언젠가는 깊은 슬픔을 경험하는 날이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깊은 슬픔을 깊은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느냐에 있다. 깊은 슬픔을 통해 깊은 환희를 경험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는 데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깊은 슬픔을 허락하셨다면 정녕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깊은 슬픔이 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무디어진 감각을 깨워주는 유익이다. 인간은 만사가 잘되면 감각이 무뎌진다. 무감각한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풍요를 원하지만 풍요가 주는 비극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풍요의 비극은 기쁨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데 있다. 그런데 깊은 슬픔은 그 무디어진 감각을 건드려 준다. 기쁨이란 우리 마음에 와서 닿는 어떤 것이다. 불행한 사람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기쁨의 반대는 슬픔이라기보다 무감각이다. 무감각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와 닿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무감각한 마음이 깨어나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깊은 슬픔이다.
깊은 슬픔을 통해 마음의 감각이 소생하게 되면 감사가 넘치게 된다. 기쁨과 감격이 넘치게 된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는 감동이라고 한다. 감동이 일어날 때 감격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깊은 환희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기쁨 가운데도 깊은 기쁨이 있다. 얄팍한 재미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깊은 슬픔의 터널을 통과한 기쁨이다. 늘 밝고 늘 긍정적이고, 모든 것이 잘되는 사람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 인생에서 깊은 슬픔을 경험하게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깊은 지혜요, 검은 보자기에 쌓아 보내주시는 값진 선물이다.
LA새생명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