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자금 10조… ‘퇴직연금 유치’ 편법영업 판친다
입력 2011-12-05 21:29
이달에만 가입 대기자금이 10조원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금융업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금융사들 간 과열양상으로 불법·불공정 영업행위가 횡행하자 금융감독원은 칼을 뽑아 들었다. 금감원은 현장조사를 통해 위법적인 영업행위 정황을 대거 포착, 제재 심의에 착수하는 한편 상시감독 체계를 운영키로 했다.
◇10조원 ‘노다지 시장’ 열렸다=이달은 퇴직연금 사업자에게는 ‘노다지’를 캘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사내에 예치해둔 퇴직금은 25%만 손비(損費)로 인정받고 75%는 법인세 부과대상이 된다. 그러나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법인세가 100% 면제된다. 올해 연간 순익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각 금융회사의 조건을 비교하느라 가입을 미뤘던 기업들이 이달 들어 대대적으로 퇴직연금 시장에 나오는 이유다.
또 기존 퇴직금 적립 상품인 퇴직보험·신탁의 경우 법인세 손비인정 혜택이 전면 폐지되면서 신규 판매도 중단됐다. 퇴직금을 금융회사에 맡기려면 퇴직연금에 가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달까지 퇴직연금으로 갈아타지 못한 금액 규모가 10조원에 달한다”면서 “이 가운데 최소 70% 정도는 이달 안에 퇴직연금에 가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말까지 목표액의 80%를 채워 이번 달 안에는 충분히 100%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며 “전 금융회사별로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서 사활을 건 경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
◇‘CEO vs CEO 거래’ 불공정 퇴직연금 시장=KB금융은 최근 현대자동차 그룹으로부터 거액의 퇴직연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차 그룹이 자회사인 HMC투자증권,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함께 KB금융에까지 퇴직연금 일부를 맡긴 건 두 그룹 CEO의 친분 탓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사제지간인 어윤대 KB금융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그룹 부회장이 ‘상부상조’한 것이란 관측이다.
퇴직연금 시장은 CEO 사이에서 종종 거래가 이뤄진다. 일선 영업점보다는 CEO의 인맥과 영업전략 등에 따라 실적이 좌우된다. 또 거대 금융지주나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일반 금융회사의 경우 상품권, 콘도할인권 등 과도한 사은품을 안기거나 역마진을 감수한 고금리를 제공하는 불공정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이 이달부터 퇴직연금 신탁 시 자사상품 비중을 70%로 제한한 것도 자사상품의 경우 되레 손해가 나더라도 고금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장검사에서 불법·불공정 영업행위를 대거 적발한 금감원은 소명 과정을 거쳐 내년 2월쯤 해당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장기간에 걸쳐 거액을 맡기는 것으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면서 “금융회사가 경쟁적으로 고금리를 제시하면서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에 나선 것인지, 불법·불공정 영업행위가 이뤄지는지 등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