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녹색마을] 수십억 퍼주는데 “NO”… 정부·주민 ‘에너지 자립’ 시각차
입력 2011-12-05 21:53
저탄소 녹색마을 정책은 정부가 하향식으로 단시일에 추진하는 정책의 장기적 전략 부재가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에 대한 반면교사가 될 전망이다. 에너지 자립에 관심이 큰 마을과 환경단체들은 녹색마을의 목표와 추진방식을 재설정해야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꼭 필요한 이 사업 자체를 접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실패 사례=충남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 이장은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던 정부와 사업 추진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주민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거듭한 끝에 자살했다. 금대리 이장은 누구보다 열심히 주민의견을 모으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대리는 애초 선정된 이웃의 계룡면 월암마을에서 진행되던 시범단지 사업이 주민 반대로 무산되자 지난 6월에 사업을 이어받았다. 월암마을은 바이오가스플랜트(BGP)에서 쓸 돈분 35t과 음식물 폐기물 10t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했기 때문에 운송과정에서의 악취가 주민 반발을 샀다. 그래서 재생에너지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금대리 일부 주민은 “월암마을에서 기피한 시설을 왜 우리 마을에 들여오느냐”고 반발했다.
광주 남구 승촌마을에서는 주민 반대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구청장이 바뀌자 기존사업에 지원을 끊었고 반대하던 주민들이 다시 서명운동에 나섰다. 환경부는 사업대상을 양돈농가가 많은 광주 광산구 망월마을로 변경했다. 전북 완주군 덕암마을은 BGP 도입계획이 아예 무산됐고 녹색마을센터와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관광상품화로 사업내용이 변질된 경우다.
◇관건은 주민의 공감과 참여=녹색마을 사업이 삐걱대는 것은 무엇보다 에너지 자립을 보는 정부와 주민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바이오에너지 공급 확대를 통해 발전원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데 관심이 있어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큰 규모로 지으려고 한다. BGP도 주변시설 가꾸기에 많은 돈을 쓰면서 전시성 사업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그러나 양돈 농가가 있는 농촌 주민은 축분 처리에 우선적 관심을 두고 있고 규모도 적은 것을 선호한다.
녹색연합 이유진 녹색디자인팀장은 “신청규모를 가구 수나 물리적인 단위로 제한하지 말고 사업비도 미리 정하는 것보다 충분한 검토와 합의를 거쳐 마을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책정하는 저탄소녹색마을 조성사업 시범단지의 사업비는 50억원 안팎이다. 사업비 대부분은 국비나 지방비로 충당된다. BGP 규모도 보통 30t 이상이다. 반면 농가 주민들이 생각하기에 알맞은 BGP는 5t 규모로 가스 압축시설과 열 배관 등 관련시설을 모두 갖출 경우에도 16억원 정도면 충분하다. 정부 지원과 별도로 독자적 에너지 자립마을 가꾸기를 실천하고 있는 전북 임실 중금마을의 김정흠씨는 “돈이 넘치도록 지원되는데 왜 이장이 자살하고 주민 갈등이 생기는가”라며 “현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을 고쳐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북 부안 등용마을의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 소장은 “마을에서 (재생에너지 시설을) 하겠다고 하면 정부와 지자체에서 좋다고 돈을 내주지만 하겠다고 하는 마을이 거의 없다”며 “농민적 관점이 중요한데 이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정흠씨도 “중앙정부의 예산과 사업은 널려 있지만 마을의 인구, 입지조건, 주민들의 현실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녹색연합 이 팀장은 “주민 주도로 에너지 자립마을을 추진하고 있는 부안 등용마을, 임실 중금마을, 통영 연대도와 연계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등용마을은 약 30여 가구, 50여명 주민이 프로젝트를 통해 에너지소비를 30%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로 에너지의 50%를 충당하고 있다. 단열을 위한 집수리와 시민들이 투자해서 세운 태양광발전소가 일등 공신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작은 섬인 경남 통영시 연대도는 마을회관을 완벽한 패시브하우스(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으로부터만 에너지를 얻는 집)로 지었다. 자신감을 얻은 주민들은 다른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