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上王’ 푸틴도 인터넷 위력에 ‘비틀’

입력 2011-12-06 01:15

‘아랍의 봄’에서 타산지석을 삼지 못한 것일까. 러시아의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도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위력에 맥없이 비틀거리고 있다.

4일(현지시간) 치러진 러시아 하원(두마) 선거에서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이 사실상 패했다. 통합러시아당은 50%에 못 미치는 49.5%(개표율 96% 현재)의 득표에 그쳤다. 이는 4년 전 64.3%에서 크게 추락한 것으로 확보 의석도 전체 450석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315석에서 238석으로 크게 줄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많은 러시아 국민이 내년 대선에 3선 도전을 선언한 푸틴의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선거 부정 동영상으로 촬영=스마트폰을 통한 선거부정 감시가 푸틴과 집권당의 약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선거 감시에 나선 유권자들은 누군가가 버스를 동원해 유권자를 여러 투표소로 실어 나르는 장면을 찍어 유튜브와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VOA)이 보도했다.

독립 선거감시 기구 ‘골로스’(목소리 또는 투표라는 뜻)는 선거감시원 2500명 가운데 90%가 투표를 지켜봤다고 밝혔다. 릴리야 쉬바노바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재자 투표함을 이용한 부정이 행해졌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은 앞서 선거운동 기간에도 푸틴 지지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지난달 러시아 이젭스크 지역의 한 자치단체장이 집권당을 찍으면 돈을 주겠다고 퇴역 군인들에게 제안하는 동영상이 유튜브 사이트에 올라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푸틴과 집권세력은 부정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러시아 국민에게 각인됐다. 뉴욕타임스는 “스마트폰이 새로운 선거 감시자가 됐다”고 썼다.

◇대선 앞두고 인터넷 감시 강화할 듯=푸틴과 집권당은 TV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대해선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골로스는 이 틈을 타 100여건의 동영상을 포함해 선거 부정 사례 6000건을 인터넷을 통해 수집, 공개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선거 감시에 위협을 느낀 당국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실제로 선거일인 4일 골로스와 야당 성향의 언론사 2곳이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받았는데, 배후로 통합러시아당이 의심받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투표 종료 후 “하원의 세력판도는 국가의 실질적 정치세력 판도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결과를 인정했다. 이어 “제휴성 블록을 형성하는 게 불가피하다”며 연정 가능성도 내비쳤다. 야당 가운데는 공산당이 19%를 득표해 제1야당(92석)이 됐고, 중도좌파 성향의 정의러시아당이 13%를 득표해 64석을 차지했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11%로 56석을 확보했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선거에서 벌어진 일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 당국이 부정선거 조사에 착수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