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한·미 FTA와 의료괴담

입력 2011-12-05 17:47


보건복지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의료괴담 해명에 나섰다. 한·미 FTA 비준 후 공공연하게 떠도는 의료 분야 괴담의 대부분이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유포되는 반(反)FTA 괴담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SNS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의료 분야 FTA 괴담은 대체로 약값 상승에 따른 건강보험 파탄으로 모아진다. “건강보험, 미국처럼 민영화된다. 약값과 병원비가 폭등한다. 국내 제약산업이 미국에 종속된다”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나는 원래 큰 틀에서 한·미 간 자유무역 추진이 옳지만 의료 분야에 관한 한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 우리의 국제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미 FTA 속 의료 분야 쟁점은 크게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로 건강보험 제도 무력화, 영리 병원화 가속, 약값 상승, 허가-특허 연계로 국내 제약사의 복제약 생산 위축 등 네 가지로 압축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권 일부와 괴담 속에서 제기되는 ISD가 아니라 신규 의약품 허가를 특허와 연동시킨 것이다.

ISD는 쉽게 말해 분쟁 발생 시 해당 국가의 국내법을 우선 적용하되 제소자가 그 법이 불편할 경우 제3의 중재 기관에서 다루도록 한 일종의 조정 장치다. 만약 미국 제약사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복제약 판매 위주의 국내 제약사는 불이익이 예상되는 미국 법정을 피하고 싶을 때 ISD를 활용하면 된다. 이는 국내 법정을 피하려는 미국 제약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금 와서 ISD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정실주의로 법을 운용하는 법치 후진국이거나 미국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얘기와 같다. 나라마다 사정이 있다고 해도 법 운용은 만인에게 공평한 것이 원칙이다. FTA에서도 그게 국제 표준일 것이다. 더욱이 이 제도는 건강보험과 같은 공공분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ISD로 인해 건강보험 제도가 무력화된다는 것은 기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남은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ISD가 미국 제약사 입장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쪽 입장도 공정하게 헤아릴 수 있도록 불편부당한 장치가 되게 하는 일이다.

사실 이보다 더 우려되는 상황은 약값 상승 및 국내 제약산업 위축 문제다. 신규 의약품의 제조 및 판매 허가를 물질특허(신약 보호)와 연계시킴으로써 국내 제약사들의 값싼 복제약(제네릭) 출시에 제동이 걸리고 미국 약의 독점적 시장지배 기간이 그만큼 길어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은 건강보험 진료 시 상당 기간 더 비싼 미국 약을 처방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 때문에 이 조치 시행에 FTA 발효 후 3년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서 미국과 대등한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우리가 개발한 토종 신약은 모두 17개뿐이다. 그나마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일부 국가에서만 판매된다. 미국 제약사가 가진 글로벌 신약은 줄잡아도 우리의 10배 이상이다. 현재로선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특허청과 협력, 미국 제약사의 부실한 특허가 등재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특허로 인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게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