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7) 가난 속 아버지 “고교 졸업후 面 서기가 되거라”

입력 2011-12-05 20:50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시험을 치러 중학교에 가서도 문제는 가난이었다. 기성회비를 한 번도 제 날짜에 내 본 적이 없다. 매번 몇 달이 지나서 냈고 그것도 아주 어렵게 냈다. 그런데 그때는 선생님들이 기성회비를 제 기간에 내지 못한 학생들을 불러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집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지금도 그때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던 동정 어린 눈빛들이 눈에 선하다. 특히 여학생들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다. 지금 생각해도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런 날이면 기가 팍 죽어서 집으로 돌아오며 “왜 나는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 우리 집은 왜 부자가 아닐까? 친구들 앞에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말을 읊조리곤 했다. 지금이라면 “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떼같이 지켜 주시나니(시 107:41)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시 68:10)”라는 말씀을 믿고 견뎠겠지만,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복음을 알지도 못한 채 가난이 주는 고통 속에서 소망 없는 날들을 보내야 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과외를 해서 용돈을 벌어야 했다. 때마침 친한 친구가 중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자기 조카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것을 계기로 방학동안 예비 중학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과외지도 해서 돈을 벌었다. 그렇게 겨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 놓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는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면 서기를 해야 한다.” 아버지는 시내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동네 이장을 십 몇 년 동안 하셨다. 그러니까 마을 이장이셨던 아버지 시각에는 지금 말로 하면 면 서기가 로망이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가 닭을 잡는 날이 있었다. 그날은 면 서기가 우리 마을을 방문하는 날이다. 그날은 아버지께서 시내에서 오셔서 면 서기와 마을 일을 의논하시는데 닭을 잡아 대접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고등학교를 하루 빨리 졸업하고 군대를 지원해서 다녀 온 후에 면 서기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께서 내 가방을 열어 공책을 펼쳐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글씨를 못 써서 면 서기는 못 되겠다.” 그때만 해도 면 서기는 모든 서류를 직접 손으로 써서 작성했기 때문에 필체가 좋은가, 안 좋은가가 합격의 결정적 기준이었다. 이후 타자기가 나와서 글씨를 못 써도 상관없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다.

결국 면 서기의 꿈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하게 다른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 하든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아야 취직이 되고 그렇게 해야만 어려운 가정 형편을 살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 덕분에 항상 반에서 상위권에는 들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목표일 뿐이었다. 나는 전혀 대학 진학을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돈이 없어서 겨우 다닌 내가 어떻게 남들이 소 팔고 땅 팔아서 다니는 대학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한낱 뜬 구름 같은 헛꿈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고도 구체적인 계획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