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방랑기(25)- 그분이 바로 '마지막 잎새'
입력 2011-12-05 13:24
그분이 바로 ‘마지막 잎새’
“하나님 나라는 성탄선물을 주고받은 어떤 가난한 신혼부부와 같다. 젊은 아내는 오랫동안 애지중지 키워서 무릎까지 치렁치렁 덮고 있는 금발머리를 잘라 가발장수에게 팔았다. 그래서 금으로 된 손목시계 줄을 샀다.
“남편 역시 퇴근하는 길에 머리를 다듬을 빗을 사려고 가게에 둘렀다. 금으로 칠한 것이라 값이 꽤 되었다. 허지만 아내가 행복한 표정으로 머리 빗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값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마침내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애지중지하는 손목시계를 팔았다. 줄이 없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계였다.
“성탄절 전날 저녁이 되었다. 자녀들이 없는 이 신혼부부는 둘이만 선물을 교환했다. 남편이 주는 선물을 뜯어본 아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내가 건네 준 것을 뜯어본 남편은 천정이 노래졌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신혼부부는 서로를 얼싸 안았다. 데이트를 시작한 이래 그처럼 뜨거운 포옹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들 가난한 부부는 비록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선물을 교환했지만 금보다 더 귀한 사랑을 주고받았다. 오직 하늘나라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사랑이었다.”
얼음 섞인 겨울바람이 휙휙 몰아치는 저녁 나 예수는 뉴욕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의 긴 의자에 앉아 그런 비유를 공중에다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앉아 담배 연기를 푹푹 날리던 허름한 차림의 남자 하나가 다가왔습니다. 얼굴도 좀 투박한 모습이었습니다.
“혹시 누구이십니까? 저의 소설 ‘동방박사들의 선물’을 읽으신 분 같은데요.”
“아, 소설가 오 헨리 (O Henry) 선생이시군요. 저는 나사렛의 목수 예수입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와락 껴안았습니다. 헉헉 소리를 낼 만큼 허그(hug)를 했습니다. 그가 쓴 소설 몇 편을 읽었던 까닭에 꼭 만나고 싶었던 인물입니다.
“여기는 너무 춥군요. 저의 집, 뭐 집이랄 것도 없는 쪽방이지만, 그 곳이 바로 저 옆에 있는 2층입니다. 벽난로도 있고 빵과 커피도 마련되어 있으니 함께 가시지요.”
나 예수도 그와 더 사귀고 싶어 초청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방에 들어서니 여러 가지 퀴퀴한 냄새가 비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낡은 의자에 앉아 잠시 머리 숙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니 그는 내 앞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제 행적을 모두 알고 계시잖아요? 제가 텍사스에서 은행돈 횡령죄로 감옥생활 했던 것도...... 그것으로 세상 죄 값은 치렀지만 아직 하나님께는 철저히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 예수는 의자에서 내려와 그와 함께 나란히 무릎을 꿇고 그의 등에 손을 얹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탁을 함께 했습니다.
“선생께서는 소설 쓰시는 것으로 이미 회개의 큰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선생의 작품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구가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지요. ‘동방박사들의 선물’은 나 예수가 목숨 걸고 가르친 ‘하나님의 나라 비유’를 담고 있고요.”
“과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실은 한국의 국어교과서에 실려 잘 알려진 ‘마지막 잎새’라는 단편소설도 그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지요. 무명화가가 그려 붙인 그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담쟁이 잎새 때문에 죽어가던 폐렴 소녀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온 인류를 살릴 최후의 희망이신 그 마지막 잎새를 오늘 여기에서 뵙게 되었네요.”
나 예수는 오 헨리의 영혼에서 하늘의 그윽한 향기를 한껏 맛 보았습니다.
이정근 목사(원수사랑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