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목사의 행복 칼럼] 행복in-행복人-행복印 (36)
입력 2011-12-05 13:17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고?
한 아이가 거짓말 한 게 끝내 들통이 났다. 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는 아들에게 훈계했다. “어떤 키 크고 불같은 눈과 두 개의 뿔을 가진 험악한 사람이 거짓말을 한 꼬마들을 붙잡아 화성으로 데리고 가 일을 시킨단다. 이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지?” 아이가 답한다. “엄마가 더 큰 거짓말을 하시네요.”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중에라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2백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누구든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거짓말을 하셨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창 18:12-14)
천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찾아 와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천사가 아브라함에게만 은밀히 전했는데 사라가 엿들은 것이었다. 이에 사라는 자신과 아브라함이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사라는 여성들만이 하는 월경이 이미 중단된 지 오래였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이미 늙었고 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 내가 어찌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오?”
이중적 절망이었다. 자신만 안 된다고 하면 되는데 굳이 아브라함의 형편까지 들먹거릴 이유가 뭐가 있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라의 말과 달리 하나님은 중요한 말 한마디를 생략해 버린다. “사라가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하나님은 사라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했던 말(“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놓고 한 신학자는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하나님의 거짓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해답은 하나다. 하나님은 사라의 그 작은 한마디에라도 아브라함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목사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다 운명하면서 아내에게 “만약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더 큰 목회를 하지 않았을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하며 당신을 원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목사의 입장에서는 떠나는 순간 자신을 포장하고 있던 모든 거짓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하고 싶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픈 마음이었음을 짐작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자신의 감정에는 충실한 결과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자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그 부인은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많은 갈등의 요인 가운데 하나가 대화부족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대화부족이 아니라 지혜로운 대화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거짓말’ 그것의 옳고 그름의 신학적 논쟁을 떠나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다.
남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라면 결코 옮겨 놓지 않았던 하나님의 작은 배려가 사랑의 의미를 또다시 깨우쳐 주고 있다.
송길원목사/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