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주연 배우 이승호씨 “수지타산만 좇아가는 연극 풍토… 50대 연기자들이 정통 연극해야”
입력 2011-12-04 18:06
오현경, 이승호, 박웅, 정상철, 박상규, 문영수….
‘레미제라블’에는 그야말로 연극계의 산증인이라 할 만한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것도 출연료를 전혀 받지 않은 채. 이들은 1980년대 초반 서울 대학로에서 한창 활동하던 연극인 20여명이 모여 만든 ‘30대연기자그룹’의 주축 배우들인데 지금은 ‘50대연기자그룹’으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원작인 ‘레미제라블’은 50대연기자그룹 배우들이 순수연극의 부활을 주장하며 기획한 ‘정통연극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50대연기자그룹 소속이자 이 연극에서 주인공 장발장 역을 맡은 배우 이승호(64)를 지난달 30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만났다.
“요새 볼 수 있는 흔한 작품들과는 달랐으면 좋겠어요. 문학성과 예술성을 갖춘 진득한 연극이 없어졌잖아요. 연극인들의 책임이 크죠. 이 작품은 그런 생각 속에서 나온 것이에요. 현재 연극계 흐름을 우리(50대연기자그룹)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 우리 스스로가 변화된 모습 속에서 좋은 연극을 만들었을 때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또 그게 하나의 교훈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알려진 대로 ‘레미제라블’은 빵을 훔친 뒤 19년간 복역하고 감옥을 나온 장발장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 용서와 참회와 사랑을 다룬 장대한 줄거리, 수십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로 인해 러닝타임만도 150분에 이르는 대작이다. 이승호는 “무대예술과 희곡 사이에서 작품을 창조해내는 연극인 정신이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희곡으로서 (문학성이) 인정된 좋은 작품이 많아요. 하지만 그것을 무대화시켰을 때 정극으로서 그만한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건 만드는 사람들의 고뇌 속에서 창조돼 무대에 올렸을 때에야 완성되는 거예요.”
50대연기자그룹의 위기의식이 타당해 보일 만큼 대학로에서 이른바 ‘정통 연극’은 힘을 못 쓴 지 오래다. 돈을 버는 작품이라곤 떠들썩한 코미디이거나 TV스타를 활용한 기획작, 아니면 상업성 짙은 뮤지컬 정도. ‘레미제라블’도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한참 멀었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연극을) 할 뿐이고 하고 있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해 나가는 거죠. 설령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하다 보면 좋은 작품을 만날 때도 있죠. 어떤 환경에서든 이건 내 숙명이니까 죽을 때까지 한다는 것이 내가 뿌듯하게 생각하는 보람이에요.”
이승호는 고등학생 시절 연극반에 들어간 뒤 연극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50년 가까운 삶을 살았다. 13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주인공 역할만 100여번을 해냈다고 한다. 그는 ‘레미제라블’ 각색 과정에서 삽입된 대사 “꿈같은 세월이구나….”를 읊조렸다.
“흔히 하는 말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연극에서는 정말로 배우가 꽃이에요. 그런데 요새 젊은 친구들은 작품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갖고 있는 재치를 그대로 무대 위에서 보여주죠. 관객을 웃기는 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웃으면 좋아해요. 그런 분위기가 연기자들에게 전염돼서 아쉬워요. 요즘 무대 공연이 너무나 어지러운 상태입니다.”
‘레미제라블’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18일까지 공연된다. 티켓 가격은 3만∼7만원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