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재탄생한 ‘막돼먹은 영애씨’… 직장인들 애환 코믹하게 그려
입력 2011-12-04 18:06
등장인물들 이름이 이영애 김태희인 것은 어차피 반어(反語)다. 한 여자는 예쁜 외모와 눈치를 갖췄지만 업무엔 젬병이고, 한 여자는 뚱뚱한 몸매 탓에 어딜 가든 구박덩어리다. 이들이 몸담고 있는 곳은 몇 해가 가도 그 자리인 중소 규모 광고회사.
‘오피스 뮤지컬’이라는 홍보에 걸맞게 ‘막돼먹은 영애씨’는 사회생활에 쉽사리 녹아들기 힘든 직장인을 타깃으로 삼으면서 영리하게 정곡을 찌르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건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다소 전형화된 캐릭터들이다. 무슨 업무가 그리 바쁜지는 모르겠으나 커피는 절대 제 손으로 타지 않는 과장, 내숭쟁이 막내 여사원, 정 없고 멋없는 사장. 여기에 식품 프랜차이즈 업체 최고경영자(CEO)의 아들이라는 훈남 신입사원이 더해진다. 주인공은 뚱뚱한 5년차 대리 ‘이영애’씨다.
못생기고 나이 많고, 스펙이 출중하지도 않은 여자는 ‘당연하게도’ 멋진 신입사원과 사랑에 빠진다. 이 같은 변종 신데렐라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래 온갖 대중매체가 실컷 우려먹은 주제이긴 하지만,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들이 판타지를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어 보기에 유쾌하다. 손바닥만한 사무실이지만 온갖 뒷담화와 술수가 난무하고, 싫든 좋든 노래방에서는 몸 던져 노래 부르고, 야근하기 싫어 죽을 것만 같은 갑남을녀들의 평범한 일상도 코미디에 묻힌 채 모습을 드러낸다.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가 겨냥하는 것이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해학이 아니라 값싼 유머에 불과하다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뮤지컬을 즐기는 관객들은 기꺼이 웃음을 던질 준비가 돼 있다.
뮤지컬의 본질이 음악이라면 이 작품 역시 단순하고 명쾌한 노랫말로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야근하면 수명이 줄어/ 퇴근해서 오래 살고 싶어/ 야근 정말 하기 싫어요’ ‘나는 77사이즈/ 먹을 땐 몰랐어/ 이렇게 커질 줄은/ 세상 살기 두 배 힘들어/ 남들보다 두 배로 노력해도/ 못생기고 뚱뚱하면 소용없어’ 등 기억에 오래 남진 않으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적합한 노랫말들이다.
‘막돼먹은 영애씨’의 드라마 버전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진 김현숙이 이영애 역할을 맡았다. 개그콘서트 ‘발레리노’ 박성광의 뮤지컬 도전작이기도 하다.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컬쳐스페이스 엔유에서 공연된다. CJ E&M 제작, 티켓 가격은 4만∼6만원.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