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1기의 위기] ‘변호사 인플레’ 희생양… “졸업이 두렵다” 호소

입력 2011-12-04 18:00


서울에 있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3학년인 Y씨(31·여)는 내년 졸업이 두렵다. 직장을 다니다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선택한 로스쿨. 한 학기 800여만원씩 내는 등록금이 부담스러웠지만 지난 3년간 동료들과 인권법학회를 만들어 활동하는 등 변호사가 돼 공익 활동을 펼치겠다는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지난달 9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로스쿨 취업박람회에 다녀온 뒤 좌절감에 빠졌다. Y씨는 4일 “박람회에 참가한 공익 성격의 공단 측은 내년에 몇 명을 뽑을지도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면서 “예년처럼 3명만 뽑는다면 사법연수원 출신에 밀려 로스쿨 졸업생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로펌)행을 택한 수도권 로스쿨 재학생 K씨(32)는 진로를 고심한 끝에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로클럭)에 지원했다. 건설회사를 다녔고, 재학 중 건설·부동산 전문 변호사를 꿈꿨지만 어느 로펌에서도 오라는 요청을 받지 못했다. 그는 “회사나 공기업에서 법률지식을 갖춘 인력이 소송업무 말고도 할 일이 많다는 점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 소재 로스쿨 J교수(53)는 엄격한 학사관리가 로스쿨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옥죄고 있다고 비판했다. J교수는 “정부가 로스쿨 학생을 상대평가토록 하는 바람에 5명이 듣는 강의에도 반드시 D를 받는 학생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오죽했으면 D학점을 피하기 위해 편법적으로 강의를 신청했다가 철회하는 식으로 허수의 수강생을 만들어내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어렵게 학점과 변호사 시험의 관문을 통과해도 취업난이 기다린다. 로스쿨 1기생 1500명이 변호사 시험을 보는 내년 1월을 앞두고 벌써부터 대량실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로스쿨생은 “폭증하는 변호사 수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2012년에는 사법연수원 수료생 1027명 외에 로스쿨 졸업생 1500명이 배출된다. 최근 5년간 매년 600명 이상의 변호사가 이미 배출돼 법률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야흐로 ‘변호사 빅뱅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 7월 뒤늦게 변호사법 시행령을 개정,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게 6개월의 의무연수제를 실시하겠다고 결정하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연봉 4000만원대 환경관련 직장을 접고 지방 국립대 로스쿨에서 3년을 보낸 P씨(35) 역시 의무연수를 어디서 받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전공인 환경 분야를 다루면서 의무연수 대상이 되는 기관이 국내에 단 한 곳도 없다”면서 “대한변협에서 미취업 졸업생을 상대로 연수를 한다고 해도 1000명이란 인원에게 내실 있는 연수를 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P씨는 4월 변호사 시험 합격자 발표 때 성적이 발표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변호사를 채용할 기관들이 학생들의 로스쿨 학점을 가장 중시하다 보니 재학 중에는 무한 학점경쟁에 매몰돼 실무를 접할 기회가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는 “과도기라는 점을 이해한다 해도 정부의 뒷북 대응은 좀 심하다”면서 “미국도 연방정부가 신규 변호사를 가장 많이 수용하는 만큼 우리 정부도 변호사를 공직에 적극 채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