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생활 공간서 ‘지붕 없는 미술관’ 변신… ‘마을미술 프로젝트’ 현장
입력 2011-12-04 17:50
제주도 제주시 이도2동 독사천 옆 서민아파트는 1년 전만 해도 주변 환경이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한적한 곳에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올해 아파트 옹벽에 제주 풍경을 그린 길이 140m의 벽화가 설치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고, 벽화가 없는 근처 아파트에 비해 시세도 많이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공공미술 가꾸기 사업인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퇴락한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2009년부터 추진해온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올해 전국 10개 지역에서 진행됐다. 이 가운데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제주 일대의 ‘아트 올레’와 전북 남원의 ‘혼불 문학 뮤지엄’, 경북 영천의 ‘신몽유도원도’를 최근 다녀왔다.
제주 올레길 9코스가 시작되는 서귀포 대평리 해안길에는 쇠 그물망과 자연석으로 해녀상을 표현한 설치작품 ‘숨비소리’가 행인들을 맞이한다. 포구에 들어서면 소라와 보말 등 어패류 껍데기를 붙여 만든 ‘보들락(물고기)’ 벽화와 소녀상이 서 있는 등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전시장인 ‘용왕 나드르(너른 들)’ 등이 지붕 없는 자연미술관을 형성하고 있다.
남원 서도리에 조성된 ‘혼불 문학 뮤지엄’은 이곳 출신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소재로 마을 전체를 미술관처럼 꾸몄다. 마을 어귀에는 ‘혼불’ 표지판이 들어서고 정미소와 마구간 등 곳곳에 소설 내용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벽화가 설치됐다. 옛 서도역에는 ‘혼불’ 자료가 전시되고 바로 옆 정원에는 소설 장면을 동화처럼 재구성한 조각 작품이 선보였다.
영천 가상리는 외딴 시골마을로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 얼마 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작가 50여명이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생태환경·생활 등을 잘 보여주는 다섯 개의 길을 중심으로 각각의 장소에 어울리는 회화·조각·미디어아트 등 예술작품 45점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마을회관이 ‘마을사박물관’으로 바뀌고, 무인가게 ‘바람의 카페’ 등 주민들이 만든 공예품을 판매하는 ‘알록달록 만물상’이 생겨났다. ‘영천 별별미술마을’이라 명명한 이 사업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완성됐다. 권효락(45) 생활지도자는 “미술작품이 설치된 후 동네가 활기를 찾았다”며 “영천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밖에 강원도 인제의 ‘시인 박인환-그 세월이 가면’, 전남 화순의 ‘성안마을 스토리텔링’, 충남 금산의 ‘송알송알 무럭무럭-이슬공원 재생’, 강원도 철원의 ‘쉬리마을 화강교 테마마을’, 경기도 김포의 ‘꿈꾸는 염화강-평화누리길 미술산책로’ 등이 올해 추진됐다. 벽지 마을에 미술품이 들어서면서 관광객이 늘어나는 등 명소가 되고 있다.
한 해 25억여원의 예산이 투입된 공공미술을 향후 어떻게 활용할지가 과제다. 김춘옥 마을미술 프로젝트 추진위원장은 “동네의 문화와 역사를 살린 스토리텔링 아트투어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김해곤 총감독은 “이 사업의 성공사례가 내년부터 초중등 교과서에 실릴 예정”이라며 “마을재생 프로젝트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남원·영천=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