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순영] ‘잘 살게 하세’
입력 2011-12-04 17:45
며칠 전 부산에서 세계개발원조총회가 열렸다. 대회 내내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매우 컸다. 참가국들은 한결같이 “한국이야말로 국제 원조의 모델”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더 많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개도국들이 한국처럼 잘살게 해 달라”라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잘살아보세’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1970년대 초 가족계획 요원이 농촌의 출산율을 줄이기 위해 주민의 잠자리까지 관리한다는 코미디였다. 당시는 너무 많이 낳는 것이 문제여서 산아제한을 국가 사업으로 펼치던 시기였다. 이때 ‘잘 살아보자’라며 근대화의 불길을 지피고 고도성장의 기틀이 된 새마을운동도 같이 시작되었다.
40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개도국에 우리의 경험 중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말하기 위함이다. 당시 정부는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의 아버지와 형들은 그 꿈을 공유했다. 또 근면과 희생으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정주영이 그리하였고, 이병철도 그리했다. 설계도면도 없이 선박을 수주했고, 황무지에 자동차와 전자산업을 일으켰다. 당시 이들이 이끈 기업은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개발자금을 지원하며 도로·항만을 건설해 주는 것만으로는 개도국을 발전시킬 수 없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말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은 안목 있는 국가 지도자의 비전 제시, ‘잘살아보겠다’는 국민의 강한 의지, 무모할 정도로 불굴의 신념을 가진 CEO들, 경제주체들 간 꿈의 공유, 부패하지 않은 정부, 근면한 근로자들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전달하는 수단으로는 무엇보다 고용과 부의 창출을 도울 기업을 보내주어야 한다. 창업과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중소기업 CEO들의 도전과 애로 극복의 경험이 최적이다.
필자는 몇 년 전 한 학술대회에서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대표, PMC프로덕션 송승환 대표와 저녁을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19세기 말 서구는 종교를 앞세워 우리나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에 들어가 경제를 장악하고 식민지화도 하였다. 우리도 우리 문화를 앞세워 중소기업과 함께 개도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100년 전 서구 국가들과는 다르다. 우리의 발전 경험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우리 중소기업에 세계화의 길도 열어주기 위해서라는 요지의 말이었다.
최근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고 있는 K팝의 열기를 보면서 두 분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본다. 개발원조에서 우리 중소기업의 개도국 발전 도우미 역할과 함께 글로벌화를 기대한다.
우리 경제발전 모델이 개도국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근면한 국민정신과 폭발적인 교육열이라는 사회적 자본의 이식이 필요할 것 같다. 또 가난만은 절대로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지도자와 초헌신적인 부모의 존재도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그래서 우리 모델의 전수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우리의 성공은 드물고 길이 빛날 세계사적 기록이다.
한편 최근 한국 경제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청년실업이 급증하며,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 내일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개도국 ‘잘살게 하세’와 우리 ‘더 잘살아보세’를 같이 추구해 나가야 할 때인 것 같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