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2월 5일] 기도의 능력은 결심에서부터
입력 2011-12-04 18:00
찬송: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539장(통 483)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다니엘 9장 1~4절
우리는 모두 다니엘을 기도의 사람인 줄 알고 그를 흠모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본래부터 기도의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가 기도의 사람으로 나타나게 된 이유를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니엘이 기도했다는 말씀을 하면서 특별히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했다”고 나옵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아주 귀하고 중요한 성경의 표현은 ‘결심했다’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의 나이가 지금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인생의 노년기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한평생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3번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다니엘이 인생의 말년에 다시 한 번 기도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결심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결심을 아주 귀하게 보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가 무엇인지를 말씀할 때, 기도는 ‘결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기도가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불의한 재판관 앞에 있는 과부를 보십시오. 과부는 전혀 불의한 재판관 앞에 나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상한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불의한 재판관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가장 좋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에 비유하고 우리를 과부에 비유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에 제자들은 기도하는 순간에 마치 불의한 재판관 앞에 있는 과부의 심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막막한 느낌, 답답한 느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이것이 장차 제자들이 부딪힐 상황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결단, 비장한 결심을 합니다. 나중에는 불의한 재판관이 귀찮아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라고 말씀합니다.
왜 기도가 인간 편에서의 비장한 결심과 깊은 연관이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체질상 죄인입니다. 죄인은 기도를 절대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어서 기도가 되는 경우는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를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막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사단의 세력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하여 온 힘을 다해서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기도가 잘 되는 때를 기다려서 기도한다면 평생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잘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장한 결심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누가 기도할 수 있을까요? 결심하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에게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는 왜 변화와 발전이 없을까요? 결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니엘의 기도의 태도가 우리의 모습이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 주님, 기도의 사람 다니엘과 같이 우리도 비장한 결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지웅 목사(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