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6)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장… 장날엔 꼭 결석을
입력 2011-12-04 18:00
나의 고향은 경기도 포천의 산골, 열두어 채의 집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였다. 당시는 6·25 한국전쟁 때문에 너무나 가난했다. 더구나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신다고 시내로 나가서 사셨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5남매를 혼자 키우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그때는 정말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들었다.
워낙에 작은 시골 마을이라 초등학교 전체 학생이라고 해 봐야 열 명이 채 되지 않았고 심지어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년도 있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던 첫 해가 1학년 학생이 한 명도 없던 해였다. 그 다음 해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동네 여자 아이 두 명과 같이 1학년에 입학하면서 무난하게 학교를 다니게 됐다.
나는 새로 입학해서부터는 전년도에 이미 학교에서 한 달 정도 적응을 했고 또 누나들로부터 유치원 과정을 배운 덕택에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앞서 갈 수 있었다. 1학년부터 시작해서 6학년까지 6년 내내 줄곧 반장을 했고 마지막엔 수석졸업을 해서 교육장상도 탔다. 그런데 개근상은 한 번도 타지 못했다. 왜냐하면, 5일에 한 번씩 서는 포천장에 동네 사람들을 따라 가서 시내에서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만나 식구들이 5일 동안 먹을 쌀을 사 갖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대부분이 그랬지만, 특히 나에게는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내셨다. 답 두 개를 보기로 주시고는 맞다고 생각하는 답에 차례로 손을 들라고 하셨다. 나는 첫 번째 답이 맞는 것 같아 손을 들었고 반 아이들 대부분이 나를 따라 손을 들었다. 반면 두 번째 답이 맞다고 손을 든 아이는 한두 명에 지나지 않았다. 첫 번째 답은 오답이었다. 선생님은 “이것이 맞는다고 했던 사람은 다시 손을 들라”고 하셨다. 나는 스스로 답이 틀렸다고 손을 드는 것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를 콕 지목해 물어보시는 것이 아닌가. “너는 몇 번에 손을 들었느냐?” 선생님은 나를 주의깊게 보고 계셨던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일 번에 손을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다시 손을 들라고 했을 때 손을 들지 않은 것도 일종의 거짓말이다”라고 하시며 교실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내 두 손을 칠판에 대고 한쪽 발을 들게 하시고는 발바닥을 때리셨다. 너무나 창피했다. 반장으로서 언제나 당당하고 모범이 되었던 내가 거짓말한 것이 탄로 나서 친구들 앞에서 매를 맞으니 발바닥의 아픔보다도 얼굴이 더 화끈거려 참을 수 없었다.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데 건너편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교회의 하얀 십자가가 보였다. 거짓말을 하면 죄 짓는 거라고 중얼거리던 짝꿍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 사탕을 받으러 교회에 갔다가 목사님께 들은 말이라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지금도 이 말씀을 묵상할 때면 그때의 기억이 큰 깨달음으로 떠오르곤 한다. 중학교에 가서도 가난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 다녔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