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학자 백소영이 만난 사람]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신앙과 인생, 김숙희 전 교육부장관

입력 2011-12-04 19:37


“정해진 답만 원하는 요즘 같으면 난 대학 못갔을것”

남산에 이렇게 예쁜 둘레길이 있는 줄 몰랐다. 단풍이 여전히 예쁘단 말씀에 설마 했다. 초겨울에 단풍잎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다섯 해 전 급작스레 겪은 뇌졸중에서 기적처럼 회복을 경험한 뒤로는 매일 두 시간여씩 걷기 운동을 하신다 하기에 찾아간 길. 세상에나! 가장 늦게까지 남아 빨갛게 노랗게 가지 끝을 장식한 단풍의 색깔이 여간 고운 게 아니다. 서울 한복판 분주한 일상 중 뚝, 선물처럼 주어진 그 길을 걸으며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의 신앙과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아유, 요즘 같으면 난 대학교 못 갔을지도 몰라요. 정말로, 못 갔을 거야.” 미국에서 석·박사를 3년 안에 마치고 곧바로 미국항공우주국(NASA) 프로젝트에 투입된 재원인 데다 1993년에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분이 그리 말씀하신다. 하여 믿기지 않아 그저 웃고 마는 나에게 김 전 장관은 정색을 하였다. 다그치고 재촉하고 밀어붙이고, 무엇보다 정해진 답을 달달 외우게 하는 오늘날의 교육현장에 대한 그녀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들은 놀아야 해요. 특히나 여덟 살까지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놀면서 창의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학원에서 획일화된 지식을 집어넣어주며 이게 정답이다, 이걸 골라라 그렇게 가르치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창조력을 잃게 되는 겁니다.”

김 전 장관의 분석에 따르면 일종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라 한다. 빠른 결과와 눈에 보이는 업적만을 요구하는 세상 풍조도 문제지만, 그럼에도 낳은 이, 기르는 이로서 엄마들이 기다리는 마음, 내 아이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봐주려는 인내심이 없어 이 모양이 된 거라 하신다.

김 전 장관은 ‘어머니’의 자리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실은 그녀의 어머니께서 본을 보이셨다. 자녀 여섯이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분들이니 듣는 나도 ‘어머니의 교육법’에 솔깃했다. 김 전 장관의 큰오빠는 고려대 김용준 박사이고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막내 동생이다. ‘구십삼년칠개월’을 사셨다고 날 수를 헤아릴 만큼 각별했던 어머니, 실은 그 어머니를 여읜 상실감에 뇌졸중도 겪은 것이라 고백한다. “내게 하나님은 어머니를 통해서 오셨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초월신이신 하나님을 인간의 언어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만, 그 신앙을 가진 구체적 인간이 인격을 통하여 삶을 통하여 관계 안에서 그 하나님을 보일 수 있다는 그녀의 신앙고백은 평생 그리 사셨던 어머님에게서 배운 것이다. 문득 요한일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1 4:12) 김 전 장관의 어머니는 신앙훈련에 있어서도 예절교육에 있어서도 매우 엄격한 분이셨다 한다.

주일성수를 안하려 잔꾀를 내거나 손님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어머니의 매’ 덕분에 신앙도, 예의범절도 어려서부터 몸에 배고 녹아들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생각은 자유롭게 하도록 북돋으시고 기다려주신 분이다. 스스로 하도록,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그리 열어놓고 인내하신 분이셨다. 천수를 누리고 가신 어머니를 회고하면서도 여전히 눈가에 그리움이 촉촉하게 묻어나는 김 전 장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날 정확히 그 반대로 하고 있는 젊은 엄마들의 양육방식을 반성해 보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건 말건 ‘내 아이 기죽이지 않겠다’고 풀어놓아 기르면서, 정작 풀어주고 놓아주어야 하는 사고의 영역,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에 있어서는 틀에 박힌 학원교육에 몰입하고 있지 않은가! 제도의 변혁도 중요하지만 먼저 어머니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김 전 장관은 역설하였다. “이게 시너지거든요. 세상이 경쟁적이라 할 수 없어. 이러면서 엄마들이 얼른 보이는 답만 내놓는 학원에 열광하면 그런 기관들이 자꾸 생기는 거고. 엄마들의 교육자세가 바뀌어야 해요!” 그 말에 학부모인 나는 ‘아멘’ 하는 심정이었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그리 외치고 싶었다. ‘신앙도, 인생도 스스로 하는 거다. 한 인격으로 그 사람만의 답을 찾아가는 거다. 어찌 나의 답이 너의 답과 똑같겠는가?’ 그리 말하는 김 전 장관의 고백을 듣고 있자니 집안에서는 ‘함용준’이라 불린다는 큰오빠 김용준 교수의 신앙고백이 어른거렸다. ‘노예의 신앙 말고 아들의 신앙, 스스로 주체가 되어 고백하는 산 신앙을 가져라.’ 그리 외쳤던 20세기의 기독교 지성인 함석헌의 사상적 제자였던 큰오빠. 실은 그녀에게는 여전히 멘토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올해 칠십사세인 그녀는 열 살이나 위인 큰오빠와 몇몇 지인들과 함께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독서클럽을 열고 있다. 신앙서적도 읽고 인문학 책도 읽으면서 평생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자아’의 구도자적 성실성을 멈추지 않는다. 의사이셨던 아버지, 유기화학자인 오빠, 그리고 그녀 자신도 영양학을 전공한 과학도다.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추구가 몸에 배고 의식에 박힌, 그런 과학도의 눈으로도 엄밀하고 정확하게 보면 신의 섭리영역을 인정하게 된단다. 같은 생명인데도 달리 반응하는 개체의 자유가, 창조적 능력이 어디서 왔겠느냐고, 그녀는 반문한다.

“반대방향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르지요?” 남산을 내려오며 같은 길을 달리 보는 ‘시각의 차이’를 소개해주는 김 전 장관을 마주보며 웃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다. 신앙훈련이란 이렇게 하는 거다. 획일함을 고집하고 속성된 결과를 재촉하는 오늘의 교회와 사회가 듣고 배웠으면 하고 욕심을 내어본다.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

김숙희

1937년 충남 천안 출생. 이화여대 가정대 졸업. 미 텍사스여대 영양학과 석·박사. 미국항공우주국 프로젝트팀 초빙(63~65년). 한국영양학 부회장, 한국식품화학회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장, 제34대 교육부장관 역임.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2년 은퇴. 현 강남문화재단 이사장. 서울 대신감리교회 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