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권력자의 세상을 향한 메시지

입력 2011-12-02 17:40


거대건축이라는 욕망 / 데얀 수딕 / 작가정신

1929년 10월 23일 대형 첨탑이 미국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 꼭대기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조각을 내 몰래 반입한 뒤 비밀리에 조립한 것이었다. 모자 쓴 크라이슬러 빌딩의 키는 갑자기 38m나 커졌다. 319.4m. 세계 최고(最高) 빌딩이 된 것이다. 하루 전까지 1위를 주장하던 283m 높이의 경쟁자 맨해튼은행사옥(지금은 트럼프 빌딩으로 불린다)은 비밀작전에 뒤통수를 맞고 2위로 주저앉았다.

첩보전이라 불러도 좋을 노력의 유효기간은 딱 1년이었다. 381m 높이의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치고 올라오더니, 곧 페트로나스 타워(말레이시아)와 101타워(대만)가 등장했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828m 부르즈 칼리파(두바이). 인류 최초 1㎞ 마천루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킹덤 타워가 완공되면 지구촌 스카이라인은 또 한번 바뀔 것이다.

더 높은 구조물을 지으려는 노력. 세상 꼭대기에 서보겠다는 투지를 인류의 욕망이라고 부르는 건 부당하다. 높이에 대한 현대 도시의 열망은 자본의 욕구 불만, 피라미드 왕궁 신전 성당 모스크가 보여주는 건 권력의 본능이다. 권력과 건축. 둘은 늘 정비례 관계였다. 권력자의 야망이 강하고 끈질길수록 건물은 크고 넓고 높게 솟았다. 건물은 도시가 되기도 했다. 히틀러가 제3제국 수도 게르마니아를, 스탈린이 제정러시아와 단절한 사회주의 이상도시 모스크바를 꿈꿨듯 말이다.

영국 출신의 건축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데얀 수딕이 쓴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은 건축이 왜 가장 정치적 예술행위인지를 20세기 역사를 관통해 살핀다. 건축과 정치의 거래는 건축의 본질과 관련 있어 보인다. 저자는 건축을 ‘돈, 노동을 배분해 자아를 풍경과 도시로 확대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자원을 독점한 권력자에게 건축은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발신하는 효과적 방식이었다. 세상 모든 정치권력이 건물을 짓고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고 물길을 트는 이유. 부수고 짓는 행위가 권력자의 자아를 세상에 투영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건축을 ‘사상 최대 규모의 정치캠페인’으로 도약시킨 건 히틀러, 무솔리니, 마오쩌둥, 스탈린 같은 20세기 독재자들이었다. 한때 건축가를 꿈꿨던 히틀러가 건축에 가진 애정은 남달랐다. 그는 건축을 ‘제3제국의 힘과 위용을 드러내는 도구’인 동시에 ‘돌에 새긴 새로운 사상이자 정치적 의지’라고 믿었다. 그의 건축이념이 구현된 대표 사례는 독일 베를린의 총통관저. 9m가 넘는 천장과 대리석 바닥, 400m에 달하는 좁고 긴 복도. 총통관저 현관을 넘은 방문자는 히틀러의 서재에 다다를 즈음, 심리적 무저항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1939년 3월 어느 새벽, 체코를 독일 보호령으로 둔다는 항복문서에 서명한 에밀 하샤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처럼 말이다.

건축으로 선동하고자 했던 권력자의 꿈은 때로 이뤄지고 때로 좌절했다. 제정러시아 시대의 성당을 부수고 소비에트 궁전을 세우려던 스탈린의 계획은 20세기 말 결국 성당의 복원으로 결말 맺었다. 고대 도시 로마를 파시즘의 성지로 만들고자 했던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꿈 역시 로마 외곽의 퇴락해가는 건물 몇 채로 잊혀졌다. 성공사례도 드물지 않다. 제국주의 영국은 식민도시 뉴델리(인도)를 통해 영국의 통치이념을 전파했고, 케말 파샤(터키 초대 대통령)는 새 수도 앙카라에 투르크 민족주의를 새겼다.

독재자만 건축을 정치수단으로 활용했던 건 아니다. 서구에서 동유럽 신생국까지 건물은 정치인의 발언대였다. 10억 파운드의 예산이 투여된 영국의 밀레니엄 돔 프로젝트는 “재선에 도전할 때 선거운동의 분위기를 띄워줄 축포 같은 랜드마크”가 필요했던 토니 블레어 총리의 과감한 결정으로 추진됐다. 국제무대에 존재를 각인시킬 ‘국가의 건축’을 원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거대한 종교건축물을 지었다.

권력이 권력을 지운 각축의 역사도 흥미롭다. 적나라한 현장은 60년간 나치 독일에서 4개국 분할점령∼동서독 분단∼통일독일로 정체(政體)가 바뀌었던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프로이센건축학교. 동독 시절 철거돼 외교부로 바뀌었던 학교는 통일 후 동독 외교부 건물이 철거되면서 이번에는 복원 운동의 대상이 된다. 시절 따라 건물의 운명이 이렇게 달라진다.

책에는 르 코르뷔지에, 필립 존슨, 렘 쿨하스 등 스타 건축가와 권력자 간 뒷거래와 타협의 드라마가 많이 담겼다. 르 코르뷔지에는 1920년대에는 프랑스 우익 정치인, 30년대 무솔리니, 40년대 프랑스 비시 괴뢰정부와 협력했다. 미국 시애틀 중앙도서관으로 유명한 렘 쿨하스의 최대 고객은 중국 공산당이었다. 한 장의 스케치가 건물로 탄생하기까지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그걸 가진 게 권력자이자 자본가이니 건축가는 힘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건축은 예술의 정치적 형태인 모양이다. 안진이 옮김. 2만8000원.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