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된 현실 들춰내는 날카로운 시선… 중국 대표적 신세대 작가 한한 소설 ‘1988’
입력 2011-12-02 17:38
한 남자가 감옥에서 출소하는 친구를 맞이하려고 길을 떠난다. 예전에 그 친구와 함께 고철상에서 구입한 스테이션왜건 ‘1988’을 타고 나선 길이다. 여행 첫날밤 그는 나나라는 이름의 한 매춘부와 밤을 보내게 되고, 임신 3개월째라는 나나와 뜻하지 않은 동행을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난 남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약 100미터 거리에 있는 철로 위로 막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몇 량인지 세어보았다. 모두 스물세 량이다. 객차 수를 세는 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내 오랜 습관 중 하나다. 단점은 바로 검산할 수 없다는 것. 그러면 어떤가?”(22쪽)
다음 순간, 매춘부는 묻는다. “선생님, 조언 하나만 해주실래요? 제 뱃속에 있는 아이가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요?”(23쪽)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2010년 미국 ‘타임’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 젊은 문화 권력자, 중국 랭킹 1위의 카레이서, 가수,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자)’의 대표 주자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는 중국 문단의 이단아 한한(韓寒·29). 그의 신작 소설 ‘1988’(생각의나무)은 1인칭 화자 ‘나’와 나나의 5일간 동행을 그리고 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왜 한한에게 열광하는가. 세계는 왜 그를 주목하는가. ‘나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라는 부제의 ‘1988’은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나’는 나나와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드문드문 복기한다. 어린 시절 이웃에 살았던 띵띵 형, 10번, 리우인인 등도 ‘나’의 기억 속에서 1988을 타고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회상이 소설의 한 축이라면 뱃속의 아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나와의 동행은 또 다른 축이다. ‘나’가 마침친구가 있는 감옥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이미 유골이 돼 있다. 사형이 집행됐기 때문이다.
소설은 여자가 낳은 아이를 ‘나’에게 선물로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1988 그 친구, 띵띵 형과 10번, 그리고 리우인인과 멍멍, 그리고 그리고 또 다른 내 친구 나나. 그들은 오로지 내가 부딪혀야 하는 높은 벽을 나를 대신해 부딪히고, 내가 빠져야 할 협곡에 대신 떨어졌다. 그런 다음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 길은 괜찮으니까 계속 앞으로 가봐. 안녕, 친구!’”(279쪽)
한한의 소설은 중국 주류 문학과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기성 작가의 보편성도 갖고 있지 않지만 중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시각이 들어 있다. 현실과 직접 맞닥뜨리며 그 실체를 드러냄에 있어 한한은 매우 날카롭고 실제적이다. 대다수 작가들이 거대 서사를 배회하고 있는 데 반해 한한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예리한 시각으로 현실 문제들을 하나하나 들추고 있다. 예컨대 학생 신분에서 생계를 위해 매춘부로 전락한 나나는 ‘손 사장’으로 대표되는 중국 공무원 출신의 비리를 은연 중 드러낸다.
“왜 손 사장님을 좋아했냐고요? 뭐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어요. 어쨌든 내가 원하는 손님이었어요. 그것만으로 만족했어요. 당시 나는 보건증 같은 게 필요했어요. 아무튼 나도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요. 시장에서 파는 돼지고기처럼 자기 자신은 매우 청결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무슨 증명이었어요.”(156쪽)
‘나’와 나나의 대화에는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면서 겪은 온갖 부조리, 가진 자들의 부패와 탐욕, 그리고 그들로 인해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 꺾인 사람들의 좌절이 잘 묘사돼 있다. 한마디로 한한의 출현은 새로운 감각의 출현을 의미한다. ‘지금 여기’를 살아내고 있는 감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가역반응’, 그것을 뉴웨이브라 칭하건, 장르 문학이라고 칭하건 간에 그 감각은 중국을 각성시키는 감각의 발견이자 윤리의 한 발견인 것만은 분명하다. 단점은 바로 검산할 수 없다는 것. 그러면 어떤가?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