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콩트집 ‘아름다운 사람들’… 인위도 없고 억지도 없는 순수 향한 목마름

입력 2011-12-02 17:38


1998년 6월 MBC 베스트극장은 소지섭, 전도연 주연의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를 방영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세진(전도연)과 동우(소지섭)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동우의 오토바이에 친 세진이 사고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끝난다.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애잔하고 서글픈 감동을 안겨준 이 드라마의 원작은 한국 시단의 원로 김남조(84·사진) 시인이 쓴 콩트 ‘소녀’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앙코르 방송까지 한 드라마의 결말은 원작과 다르다. “사람의 눈은, 가장 큰 사랑을 지니는 경우에서조차 슬프도록 무디기만 하다. 소녀는 가을에도 살아 있었다. 겨울까지 어쩌면 다음해의 봄, 아니 소년을 다시 만나게 될 여름까지도 살아 있게 될는지 모른다. 열어젖힌 창문 너머 커다랗게 얹혀 있는 평화와 용서와 그리움은 모두 이 소녀의 것이다.”(45쪽)

김남조 콩트집 ‘아름다운 사람들’(문학의문학)에 수록된 ‘소녀’를 다시 읽는 감동은 드라마의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1984년 출간됐다가 절판된 뒤 27년 만에 다시 묶은 콩트집은 영상미학이 대세인 요즘 풍토에서 문학의 고토(古土)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인은 인위도, 억지도 없이 오로지 순수에의 목마름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를 비롯한 41편의 콩트들은 지금은 없어진 41개의 간이역처럼 아련하게 다가올 뿐만 아니라 그 간이역 옆에 언제 어떻게 뿌리 내렸는지 모를 거목 한 그루가 그곳을 오가는 존재들의 슬픔과 눈물을 먹고 자란다는 식의 시적 은유를 들려준다.

김남조 시인은 “젊었던 한때, 나에게는 시와 수필류를 연달아 발표하고 즉시 책으로 엮어내던 성급한 다작의 시절이 있었고 그러고도 사람의 이야기에 목마름이 남아 소설의 영역인 콩트까지 쓰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삶의 과제와 그에 따른 대책의 논의가 뒤엉킨 가운데도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보통 사람들이 우리 삶 안에 늘 많이 있다는 사실이며, 더 나아가, 사람의 본질은 유구히 동일하며 선하고 아름다울 거라는 믿음입니다.” 송영방 화백의 격조 있는 신작 그림들이 글의 순도를 배가시킨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