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당뇨병 경증질환 분류… 환자 약값 부담만 키웠다”

입력 2011-12-02 17:16


국민일보 쿠키미디어는 지난 10월 ‘쿠키건강+’ 건강섹션을 창간하고 독자들에게 올바른 건강·질환관리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쿠키건강+’는 앞으로 건강 사회 구현과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주요 보건의료정책 이슈에 대해 심층 보도할 계획입니다. 그 일환으로 국내 주요 보건의료정책과 관련, ‘고품격 건강사회 만들기’라는 제목의 정책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에 첫 번째로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된 정부의 ‘고혈압·당뇨병 등 52개 질환에 대한 약국본인부담률 인상’에 대한 정책 점검을 위해 ‘국내 당뇨병 관리의 정책적 접근’을 주제로 ‘제1회 고품격 건강사회 만들기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앞으로 토론회의 주요 내용은 ‘쿠키건강+’ 건강섹션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됩니다. 또한 쿠키미디어 케이블방송인 ‘쿠키건강TV’에서는 토론회 전체 내용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주제= 국내 당뇨병 관리의 정책적 접근

◇일시= 2011년 11월 24일, 여의도 스튜디오

◇참석자= 박석오 대한당뇨병학회 보험법제위원회 간사, 김태명 한국당뇨협회 총무이사, 김재용 한림대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 허윤정 국회 민주당 정책위원회 보건복지전문위원

◇진행= 김민희 쿠키건강TV 아나운서

◇방송일시= 2011년 12월 3일 오후 1시∼3시, 쿠키건강TV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1일부터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과 감기, 결막염 등 52개 질환을 가벼운 질환으로 분류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이용 시 본인이 부담하는 약값을 늘리는 ‘약국 본인부담률 인상(약국약제비 차등제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혈압과 당뇨병 등 해당 질환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을 이용해 약 처방을 받는 경우 기존 본인부담률이 30%에서 50%로 늘었다. 또 종합병원 이용 시에도 본인 부담 약값이 기존 30%에서 40%로 인상됐다. 그러나 52개 질환에 포함된 당뇨병의 경우 합병증과 환자 관리 측면에서 결코 경증질환이 될 수 없음에도 정부가 이번 대상에 무리하게 포함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10월 1일 도입된 약국 본인부담률 인상(약국약제비 차등제도)에 당뇨병이 경증질환으로 포함됐다. 무엇이 문제인가?

▲박석오(대한당뇨병학회 보험법제위원회 간사)= 정부에서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을 시행하면서 포함된 제도다.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가능한 52개 질환을 정했는데 의원에서 많이 보는 질환이 기준이다. 당뇨병 환자 80% 이상이 의원을 다니고 있어 포함됐다. 의학적 기준이 아니라 의원에서 많이 진료하기 때문에 포함시켰다.

▲김태명(한국당뇨협회 총무이사)= 당뇨병 환자는 병원을 옮겨 다닐 수 없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전문의에게 의존한다. 당뇨병 환자들이 1차 의료기관 갔다가 치료 받지 못하거나 합병증 관리를 못한 경우도 있다. 당뇨병 전문의가 아니다보니 혈당강하제를 반알 더 먹어라 하는 정도다. 환자는 1차에 갔다가도 종합병원으로 유턴한다. 1차 병원의 관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52개 질환에 당뇨병이 경증으로 포함된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허윤정(민주당 전문위원)= 이번 제도는 목표와 수단이 맞지 않는다. 환자를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잡겠다면서 환자 본인부담을 높여서 바로 잡으려 한다. 다른 저의가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정책이다. 감기 환자가 왜 종합병원에 가는지 원인 진단이 없다. 환자 주머니에서 돈을 더 내게 하는 나쁜 정책이다. 동네의원이 당뇨병 환자를 잘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종합병원에 가라고 해도 안갈 것이다.

▲박석오= 제도 시행 이후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약값부담 때문에 1차 의료기관을 간다. 의료기관이 당뇨병 환자 관리능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약값 때문이다. 문제는 환자들이 강제 이동을 하는 것이다. 강제 이동보다 환자를 존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먼저다. 정부가 ‘1차 의원만 가라 돈 있으면 3차 가라, 알아서 해라’ 하는 것은 당뇨병 환자가 큰 병원을 좋아해서 간다는 선입견을 갖고 ‘너희는 도덕적 해이를 갖고 있으니 벌칙을 받아라’ 하는 것과 같다. 말이 안 되는 정책이다.

-이번 제도의 경증질환 분류 기준이 무엇인가?

▲박석오= 복지부에 경증질환분류협의체라는 임시조직을 만들어 분류기준을 정했다. 문제는 당뇨병을 경증질환으로 분류했을 때 당뇨병 환자의 피해는 생각해봤냐는 점이다. 복지부는 ‘우린 제도만 집행할 뿐이지 제도의 구체적인 상병은 전문가가 결정했다’고 답한다. 정부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당뇨병 전문가인 학회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고 이익단체에게 질병을 고르게 했다.

▲허윤정= 복지부 정책은 강바닥의 물을 퍼내서 물고기를 다 죽게 하겠다는 식이다. 물론 재정절감 효과, 건강보험급여의 합리적 배분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제도는 환자의 주머니를 털어 의료시스템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에서 출발했다. 이는 불가능하다. 목표와 수단이 어긋났다.

▲김재용(한림대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 장기 관점에서 만성질환관리 시스템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정부가 왜 환자들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거기를 갈까에 대한 고민 없이 겉으로 나타나는 억압만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정책은 저소득층 환자들이 영향을 받는다. 저소득층 일부 환자는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쩌다 한 번씩 큰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는다. 그리고 약국이 아니라 보건소에 가서 이대로 처방해달라고 한다. 특정 계층만 불이익을 받도록 정책이 설계됐다는 점과 이해관계가 가장 크게 얽힌 환자들의 의견수렴 절차가 부족했다는 점 등에서 정책 수립의 기본적인 절차나 원칙에 문제가 있다.

-제도 시행 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 정부도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 환자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김태명= 나는 30년 정도 당뇨병으로 투병 중인 환자다. 당뇨병으로 10년 이상 된 환자는 최소한 3개과 이상을 가야 한다. 순환기내과, 소화기내과, 내분비내과,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안과까지 정기적으로 간다. 이렇게 해서 합병증 없이 오늘날까지 관리를 해왔다. 이 사람들을 1차 의료기관으로 보낸다면 한 달 내내 병원만 돌아 다녀야 한다. 각종 진료과를 돌아다니면서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 몸이 망가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본인만 해도 상급병원 가면 약을 3∼4개월 처방 받는다. 약이 7∼8가지로 15알 정도다. 약값이 기존에 한 달 45만원이었는데 당장 70만원으로 오르게 됐다. 인슐린 주사에 각종 약까지 포함된 금액이다. 병원 갔다 온 환자들 입에서 ‘악’ 소리가 난다. 이건 절대적으로 폐지해야 하는 제도다.

▲박석오= 10월 1일 이후 상황은 학회가 예측한 안 좋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 피해는 환자만 본다. 의원으로 옮기지 않은 환자는 가만히 앉아서 약값만 33∼67%를 더 내야 한다. 정부 부담은 덜어주고, 보험료는 보험료대로 내고, 페널티는 페널티대로 받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뭔가 다른 배경이 있지 않나 의심을 할 정도다.

▲김재용= 제도가 시행되면서 장기적인 노련함이 부족했다. 건강보험 정책에서 일방적으로 특정 집단에게 위험 부담을 시키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300만명이나 되는 당뇨병 환자에게 부담을 시키면 사회적 논란이 될 것이 명확한데 이런 정책을 집행했다는 점이 놀랍다.

-현행 약국약제비 차등제도의 문제점이 그렇게 크다면 개선 방향이나 다른 대안은?

▲박석오= 정부는 약값 부담을 줄이려고 한고는 말은 안하고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이라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환자 피해만 누적되고 있다. 중증 질환으로 분류된 상병이 포함된 당뇨병은 일단은 고시에서 당장 제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김태명= 제도가 재검토되지 않는다면, 내년에 중요한 선거가 2번 있는 것으로 안다. 봄에 있는 선거부터 전국의 환자들이 행동에 들어가겠다. 환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전달할 것이고 제도 시행을 바로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정부에 재검토를 요청한다.

▲허윤정= 제도에 대해 정부 스스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주인인 가입자의 권리를 박탈하면서 건강보험제도가 잘 운영되길 바라는 건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가입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안에서 최선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의료인이 아닌 환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1차, 2차, 3차 병원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다르다. 양자가 경쟁적이게 하면 안 된다. 환자들의 진료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당뇨병 정책 모니터링 중… 입장 밝히기 힘들다” 복지부, 이번 토론회 불참 해명

국민일보 쿠키미디어는 이번 토론회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입장과 의견을 듣기 위해 관련 부서인 보험급여과에 토론회 참석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복지부는 토론회를 통해 관련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이에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복지부가 밝힌 토론회 참석 불가 이유를 게재합니다.

“당뇨병 관리 실태에 대해 보험급여과가 토론회에 나가는 것은 대표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총체적인 부분은 질병관리본부가 총괄하기 때문에 그쪽에 부탁해야 한다. 이번 정책에 대해 ‘복지부가 공격당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현재 당뇨병과 관련해서는 이미 3개월 정도 모니터링을 실시한 후 (전문가인) 의사들과 문제점을 파악해 적용방법 개선 등의 협의점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협의점을 모색하기도 전에 방송에 나가서 상병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은 복지부 입장에서는 애매한 점이 있다.”

정리=송병기, 김성지, 장윤형 쿠키건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