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연 기자의 건강세상 돋보기] 이익집단 눈치 보느라 ‘약사법 개정안’ 차버린 국회
입력 2011-12-02 17:17
결국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등 가정상비약의 슈퍼나 편의점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로써 약사법 개정안 상정은 내년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갔지만 총선 등 정치상황을 감안했을 때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번 개정안의 상정 불발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과연 국회는 정말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현재 최대 현안인 한미 FTA 비준안 통과로 인해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국민의 불만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개정안이 무산된 것은 국민의 편익보다 특정 이익집단의 눈치를 살피는 국회의 태도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역습! 이젠 국민 80%의 의견도 씹어버리는구나.” 이런 비판에 더해 ‘약사 표 무서워 국민 편익 차버린 국회보건복지위원회’ ‘6만명 약사표에 무릎 꿇은 국회’ ‘국민 아닌 약사회를 선택한 국회의원들’이라는 비판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83.2%가 진통제·소화제 등 가정상비약의 약국외 판매에 찬성했다.
모든 약은 크든 작든 부작용이 존재한다. 그래서 약사의 지도 아래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 약사들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 약을 구입하지 못하는 소비자의 불편함 역시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에 의해 뽑힌 국민의 대표가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국가기관이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바를 처리하지 않는 처사, 이것이 과연 국민의 대표이자 국가기관인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약사회의 로비를 탓할 필요조차 없다. 약국외 판매가 시행될 경우 약국 전체 매출의 30% 정도가 줄어든다고 한다.
약사회는 이익집단이다. 자신들의 직역에 결정적인 위협이 되는 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막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약사도 국민의 일부다. 그들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보다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모든 직역의 대표다. 앞으로 의사들이, 변호사들이 자기 업종에 타격이 크니 이런 법률 제정해달라면 해주고, 하지 말아달라면 말 것인가.
조창연 기자 chyjo@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