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딛고 이웃돕기 팔 걷은 안용묵 사랑의보일러나눔 대표
입력 2011-12-01 18:13
“소년소녀가장 꿈에 보탬된다면 죽었다 산 인생 몇배 보람될 것”
“더위는 참을 수 있어도 추운 것은 참기 어려워요. 우리 주변엔 한겨울에 보일러도 없이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살지만 꿋꿋하게 사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사랑의보일러나눔’ 안용묵(56) 대표가 자주 던지는 말이다. 보일러 없이 겨울을 지내본 사람이라면 두 말이 필요 없는 표현이다.
안 대표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 영등포구와 금천구 일대 소년소녀가장을 대상으로 무료 보일러를 설치해주거나 고장난 것을 고쳐주는 일을 한다. 지난해 80가구, 올해는 98가구에 온기를 넣어줬다. 매주 1가구씩 1년에 50여곳을 목표로 했지만 차마 눈뜨고 지나칠 수 없어 배로 늘었다.
충남 예산 출신인 안 대표는 보일러 전문가다. 그의 집안은 고향에선 소문난 부자였다. 하지만 큰형님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결혼할 땐 속옷도 갈아입을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동갑내기 아내 권성심(KR귀뚜라미 보일러 대표)씨가 신혼여행 가방에 넣어 온 와이셔츠 1벌과 양말 1켤레를 형에게 줄 정도로 우의가 남달랐다. 여름엔 비가 새고 겨울엔 한대나 다름없는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아내 몰래 사업자금도 보탰다.
1970년대 후반 여의도순복음교회 청년부에서 만나 81년 결혼한 안 대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귀뚜라미 보일러를 통해서다.
안 대표는 국내 보일러 업계에선 산증인이다. 로켓보일러 시절인 20세 때 영등포 대리점(AS) 기사로 입사해 한 우물만 팠다. 95년엔 시흥지점을 개설했으며 이듬해 최우수서비스상, 다시 1년 후 대리점으로 승격하는 발전을 거듭했다.
그는 늘 아침을 기다렸다. 대리점 기사로 시작해 지정점, 전문점, 대리점으로 커가는 즐거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날이 성장해가는 회사를 보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새날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엔 신림대리점을 운영하면서 1만2000대를 판매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열정에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일까. 우여곡절 끝에 뇌종양 수술을 받고 목발을 짚고 사업을 해야 했다. 2006년 투병 중에 목사안수까지 받았다. 2008년엔 건강을 되찾아 마침내 영등포 대리점을 오픈했다.
“죽었다 살아난 인생 아닙니까. 하나님이 살려준 목숨 값으로 나눔 활동을 하고 싶었지요.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보일러 나눔운동을 벌이기로 했지요. 대상은 소년소녀가장 보금자리고요.”
문제는 방만 따뜻해선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 대표는 지난해에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과 대학생 29명에게 학업의 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급했다. 97년부터 남모르게 해오던 일을 공개적인 사업으로 전환했다.
1일 오후 서울 신길동 백악관 웨딩문화원에선 꿈을 향해 전진하는 모범 청소년 30명이 안 대표의 손을 잡고 활짝 웃었다. ‘2011 사랑의 보일러 나눔 장학금 전달식’엔 배우 정준호씨와 신현준씨가 동참해 위로의 메시지와 박수를 보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