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말

입력 2011-12-01 17:46

서정춘(1941∼ )

말이 달린다

다리다리 다리다리

말이 달린다

디귿리을 디귿리을

말이 달린다

ㄷㄹㄷㄹ


말의 몸통과 다리가 두 행으로 구분돼 달리고 있다. 말을 받쳐주는 다리가 디귿리을로 변주되면서 무릎과 발목의 꺾임이 한글의 자음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규칙적으로 다리를 바꾸며 달리는 말의 운동성은 ㄷㄹㄷㄹ이라는 자음으로 한층 시각화된다. 번다한 수사를 모두 제거한 이 시의 묘미는 ‘달린다’라는 동사에 있다. ㄷ과 ㄹ로 이루어진 음절이 말의 관절을 상징하는 부호가 돼 행간의 여백을 향해 뛰면서 시의 공간을 확장시키고 있다.

초원을 달리는 야생말의 동작 하나하나가 ㄷ과 ㄹ에 담겨 시에 동적 움직임을 부여한다. 따그닥 따그닥, 말 달리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 음악적 감각까지도 동반하고 있다. 극서정시의 묘미는 이런 데 있다.

우리 시가 극소 지향을 추구할 때 이런 형태를 띠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말이라는 이미지만을 제시하고 아무런 설명적 어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문면 속에는 말이 달리며 내는 거친 숨소리와 바람결까지도 내재하고 있는 듯하다. ㄷ과 ㄹ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이다. 한 획 한 획마다 관절의 꺾임이 들어 있다는 점은 한글 자음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