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폴리테이너

입력 2011-12-01 17:46

우리나라에서 선거 시즌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는 여러 가지다. 이당 저당을 기웃거리는 ‘철새’들이 생겨나고, 정치생명이 끝난 것으로 여겨졌던 구(舊) 정치인들이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내고, 지지도가 높은 차기 대권주자 주변에 사람이 꼬이고, 새로운 정당들이 만들어지는 현상 등등.

정치적 활동을 하는 연예인, 즉 폴리테이너(politainer)의 출연이 잦아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한 정권의 임기가 끝나가고 다음 대선이 임박하면 폴리테이너들이 부상하기 시작한다. 비근한 예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배우인 문성근 명계남씨와 영화감독 이창동씨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탤런트 유인촌 이덕화 최수종씨 등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5년차를 향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요즘 주목받는 폴리테이너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미디어 시대가 활짝 열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탓에 폴리테이너 위력이 과거보다 강해졌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이들 말 한 마디의 파괴력은 웬만한 정치인들보다 훨씬 세다. 독설과 유머로 유권자들 감성을 파고든다.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지도부도 쩔쩔매는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폴리테이너 대부분이 반(反)MB 성향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참석한 모임에선 ‘MB OUT’ 구호만 있고 ‘MB IN’은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 청와대 참모의 말처럼 ‘저주의 굿판’이 벌어지기 일쑤다. 여기에는 현 정부에 실망한 2040세대가 SNS 애용자요, 청중의 대부분이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현 정부를 옹호하는 대중문화예술인은 찾기 힘들다. 시쳇말로 ‘생매장’당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념 편향성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과제다. 현 정부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폴리테이너들이 획일성을 강요하는 일에 맞장구치는 것은 재고해야 옳다.

14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와 SBS TV 드라마 ‘대물’에서 대통령 역할을 맡았던 이순재씨는 실제 정치인 생활을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국회에서의 4년 동안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 하늘이 파란 줄도, 꽃이 아름다운 줄도 모를 정도였다. 드라마 한 편이 정치보다 훨씬 나을 때가 많다.” 지나고 보니 덧없는 게 정치라는 이씨의 말 역시 폴리테이너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