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한번만 봐주세요” 개그맨들이 운다… SBS 개그투나잇 이끄는 박준형

입력 2011-12-01 20:59


SBS가 ‘개그투나잇(개투)’ 첫 방송을 나흘 앞둔 지난달 1일 서울 목동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을 때였다. 당시 간담회에선 마이크를 잡은 한 코미디언이 왈칵 눈물을 쏟았는데, 주인공은 무명이나 다름없던 손민혁이라는 이름의 개그맨이었다. “딱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우리 방송을) 봐 주세요….” 그의 절절한 호소에 동석한 동료 개그맨들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이들이 눈물을 훔친 이유는 간단했다. 출연자 40여명은 지난해 10월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폐지로 한순간에 ‘직장’을 잃은 개그맨들이었다. 방송 무대가 사라졌기에 어떤 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떤 이는 행사 무대를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야 했다. 심지어 12년차 개그맨인 정용국은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에라도 나가려고 KBS 신입 개그맨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다.

개투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개그의 꿈을 다시 꾸게 한 ‘꿈의 무대’인 셈이다. 이런 개투 출연진에서 좌장 역할을 맡은 이가 바로 ‘갈갈이’ 박준형(38)이다. 다른 후배들과 달리 생계 걱정할 필요 없는 스타 개그맨인 그이지만, 박준형은 후배들과 동고동락하며 개투에 자신의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둔촌동 SBS 공개홀에서 만난 박준형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개그맨들을 본 적이 없다” “가슴 속에 다들 한(恨)이 응축돼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일자리를 잃어본 사람들이니 일자리의 소중함을 아는 거죠. 정말 열심히 해요. 대사나 동선을 달달달 외웠으면서도 리허설만 15번 넘게 한 뒤에 녹화에 들어가요. 개그에서는 연습 많이 한 사람, 아이디어 회의 많이 한 사람 못 이기거든요. 무직이었던 1년 동안 대학로 무대에 계속 섰던 친구들이니 실력도 좋아요. 잘하면 (웃찾사 시절의) 전성기가 다시 올 것 같아요(웃음).”

1997년 KBS 13기 공채 개그맨으로 시작, 올해로 15년째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그는 후배들의 이런 모습에서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애들이 죽을 만큼 열심히 하니까 저 역시도 옛날 같으면 한 번 연습하고 녹화 들어갈 것을 10번 넘게 반복하게 돼요. 저 또한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출연자들의 이러한 ‘투혼’ 때문일까. 4회까지 방송된 개투는 매주 시청률을 끌어올리며 순항 중이다. 지난달 5일 첫 방송에서 4.6%였던 시청률은 5.5%(12일), 5.9%(19일), 6.1%(26일)로 상승했다. 많은 시청자가 잠자리에 들었을 토요일 밤 12시에 방송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박준형은 “굉장히 스타트가 좋다”고 자평했다. 이어 “모두가 ‘지난주보다 나은 이번 주’만 생각하면서 녹화에 임한다. 나태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끊임없이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투는 개콘 등 기존 공개 코미디보다 시사성 강한 유머를 구사한다. 박준형·강성범이 콤비를 이룬 뉴스 포맷의 ‘투나잇브리핑’이 중간 중간에 배치되고, ‘적반하장’ ‘하오차오’ ‘더 레드’ 등의 코너엔 우리 사회의 위선을 꼬집고 비트는 코드들이 깃들어 있다.

박준형은 “이런 시사 코미디가 인기가 있는 건 나라가 그만큼 어지럽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신문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옛날부터 시사에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요즘 보면 국민들이 저마다 무언가에 억압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코미디의 흐름도 여기에 부응해야겠죠.”

2001년 ‘옥동자’ 정종철 등과 함께 ‘갈갈이 삼형제’라는 코너에서 앞니로 무를 갈며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개콘이 만들어낸 역대 최고 스타로 손꼽힌다. 2003년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만 봐도 그렇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이 시상식에서 유재석 강호동 같은 버라이어티쇼 진행자 외에 코미디에만 전념한 개그맨이 대상을 받은 건 아직까지도 박준형이 유일하다.

그는 개콘으로 복귀할 계획은 없는지 묻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이가 쉰 살쯤 되면 나가보고 싶을 것 같긴 한데 현재로서는 생각이 없다”며 웃었다. “개콘은 제가 없어도 잘 되는 곳이잖아요. 제가 비켜줘야 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개투는 달라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죠.”

그러면서 그는 ‘박준형은 과대평가된 개그맨이다’라는 글을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연예대상 수상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자기 자신을 깎아내렸다.

하지만 박준형의 이러한 ‘자기비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그는 숱한 개그맨들이 스타가 될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했다. 1998년 서울 대학로에 그가 세운 ‘갈갈이홀’이 이를 증명한다. 박준형의 말에 따르면 “유세윤 장동민 정도를 뺀 나머지 전부”가 ‘갈갈이홀’에 들어가 실력을 갈고 닦은 끝에 방송에 진출, 대중의 갈채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현재도 대학로에서 개그맨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물었다. “‘올인’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는 (스타가) 되더라고요. 개그맨은 인생을 걸만한 값어치가 있는 직업이에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